지난 4일 독일 함부르크 시청 인근 알스터 호숫가에는 기업 깃발 수십 개가 바람에 나부꼈다. 글로벌 해운회사인 하팍로이드, MSC, CMA‧CGM 뿐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한진해운을 상징했던 파란색 'HANJIN' 깃발도 걸려 있었다. 관광객들은 깃발과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이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눴다.
독일 대표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는 어딜 가나 해운‧항만‧물류와 관련된 기업이나 산업 관련 건물, 전시 등이 눈에 띄었다. 함부르크 시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 컨테이너선이나 '함부르크 수드'의 빨간색 컨테이너박스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닻(anchor) 이미지를 활용한 엽서, 배지, 에코백, 머그컵 등 다양한 상품 판매도 이뤄지고 있었다.
유럽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도 마찬가지였다. 항만 뿐 아니라 건축으로도 유명한 로테르담 중앙역은 선박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시내 중심에 위치한 전망대 '유로마스트(euromast)'는 돛대(mast)를 연상시켰다. 함부르크와 로테르담에서 묵었던 호텔 숙소마다 초대형 선박이나 항만 노동자를 찍은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함부르크와 로테르담 모두 대표적인 항만 도시인 만큼 해운과 관련된 장면을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텔, 식당, 주점, 거리 등 어디를 가든 일상생활에서 해운‧항만‧물류와 관련된 산업 현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독일 등 유럽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산업 현장 모습을 일상생활과 잘 연계해 보여주고 있다"며 "유럽인들은 해운에 대한 중요성을 아는 만큼 산업을 이해할 뿐 아니라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 해운 자부심 갖는 유럽…일상 속에서 산업 접하며 중요성 인식
유럽에서는 해운‧물류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핵심 산업으로 여긴다.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라인의 모기업인 AP묄러-머스크는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한다. 덴마크 뿐 아니라 해운업 비중이 높은 네덜란드나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해운으로 먹고 산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해운을 단순히 선박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산업이 아니라 그와 연계된 조선, 항만, 금융, 보험 등 전후방 관련 산업을 통칭하는 말로 쓰고 있다. 금융‧보험이 발달한 영국은 국적 선사가 없지만 해운이 주요 산업이다. 해운과 관련된 주요 정책을 정하는 국제해사기구(IMO) 본부도 런던에 위치해있다.
유럽은 해운 종사자들을 존중하는 문화도 가지고 있다. 함부르크와 같은 항구도시에 있는 맥주집 중에는 선장(captain)들만 앉을 수 있는 특별석이 마련돼 있는 곳도 있다. 선사들도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해운업을 접할 수 있도록 마케팅 전략을 펼친다.
머스크는 직접 버터쿠키를 만들어 12월 크리스마스 시즌 때마다 직원이나 화주 등 거래처에 나눠준다. 또 덴마크 대표기업인 레고(lego)와 협업을 통해 컨테이너선 모델을 만들어 판매한다.
◇ 한국서 "배 탄다" 하면 "참치 잡으러 다니냐"고 되물어…해운 모른다
유럽연합(EU)은 대외 수출입 75%, 대내 수출입 37%가 해운을 통해 운송되는 만큼 해운‧항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수출입화물의 99%가 선박을 통해 운송되는 국가라고 하기엔 해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해운업계에서는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인, 관료들마저 해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한진해운 파산이라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해운업 종사자들은 지인들조차 해운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서비스업인 해운을 선박을 건조하는 제조업인 조선(造船)과 구분하지 못 한다', '일상생활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보더라도 트럭이 싣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배가 컨테이너 수천 개를 싣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못 하더라' 등 직접 겪은 사례들을 언급했다.
한 해기사는 "주변 지인에게 '해운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참치 잡으러 다니냐?'고 되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어선이든 상선이든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배를 탄다고 하면 육체적으로 힘들고 천한 일을 한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동현 평택대 국제물류학과 교수가 2012년 발표한 '해운산업의 다면적 역할에 대한 인식조사 및 국민인식 제고방안' 논문에 따르면 국민 대부분 해운산업의 이미지를 방송‧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에서 해운을 접하면서 이미지를 형성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교수는 "해운산업이 시간적(time), 공간적(space), 심리적(emotion)으로 국민들의 실제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식이 낮다"며 "일상생활 속에서 해운 산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고안해 산업의 다면적 역할에 대한 인식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논문 발표 후 6년이 지나도록 바뀐 것은 없다"고 했다.
박한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해사연구실장은 "유럽에서는 해운물류 자체를 국가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과는 인식 차이가 크다"며 "한국도 수출로 먹고 사는 이상 일반 국민들도 해운‧항만‧물류가 혈관처럼 꼭 필요한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