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개월을 끌어온 한국GM의 연구·개발(R&D) 법인 설립 문제가 일단락됐다. 한국GM의 2대 주주(지분 17%) 산업은행은 18일 한국GM이 연구·개발 법인을 새로 만드는 것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대신 신설되는 법인을 GM의 글로벌 전략 신차 2종을 만드는 거점으로 삼고 10년간 유지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한국GM은 이날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잇달아 열고 법인 설립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르면 이달 중 신설 법인이 출범한다.
하지만 이날 노조가 총파업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한 데다, 산은과 한국GM이 구체적인 합의안을 공개하지 않아 당분간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 법인, 전략 신차 개발 거점 될 것"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합의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핵심은 새로 설립하는 연구·개발 법인을 향후 GM이 선보일 전략 차종인 준중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와 CUV(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자동차)의 신차를 각각 하나씩 중점 연구·개발하는 거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동걸 회장은 "기존에 GM과의 합의는 SUV·CUV 일정 물량을 한국에서 생산한다는 것만 있었는데 개발까지 한다는 것"이라며 "R&D 물량도 10년 동안 유지하기로 새로 합의하면서 향후 공장 등 생산 법인과 부품 업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차를 한국GM 연구·개발 법인이 주축이 돼 개발하면 국내 부품 업체가 자연스럽게 개발에 참여하게 되고, 향후 신차를 생산할 때도 이 회사 부품을 쓸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부품사의 매출도 늘고 고용도 증대하는 '낙수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산은과 GM은 또 "생산 법인과 연구·개발 법인이 10년 이상 지속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추가 연구·개발을 계속하기 위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합의안에 담았다. 이동걸 회장은 "GM이 유사한 사례에 대해 다른 나라에 적용하는 기준들이 있는데, 그보다 좀 더 좋은 조건을 이끌어냈다고 판단해 합의했다"고 말했다.
◇적자 쌓이는 한국GM이 부담
산은이 GM과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은 한국GM의 경영 상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끼쳤다. 한국GM은 지난 2012년 이후 누적 적자만 3조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한국GM은 경영 정상화에 나서기는커녕 지난 7월 연구·개발 법인을 새로 만들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고, 산은과 노조가 반발해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자 한국 GM과 산은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특히 미국 GM이 2년간 40조원 넘는 이익을 내고도 효율성이라는 지표에 따라 북미 공장 5곳을 폐쇄하는 과감한 구조 조정을 하고 있어 한국GM의 장기 적자가 이어질 경우 조기 철수설이 또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봐서 위기감이 컸다"고 말했다.
이때 출구 전략을 만든 것은 법원 결정이었다.
지난달 28일 서울고법이 "한국GM이 주주총회에서 일방적으로 안건을 통과시킨 것이 위법하다"며 산은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글로벌 구조 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GM 입장에서는 서울고법 판단에 재항고해 대법원의 판단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대법원마저 산은 손을 들어줄 경우 법인 신설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 보고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GM 노조 "강도 높은 투쟁 할 것"
하지만 자동차 업계 안팎에서는 신설 법인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신설 연구·개발 법인에서 개발한 기술로 만든 차를 한국GM 공장에서 생산할 때 한국GM 생산 법인이 내야 하는 사용료 문제다. 이번에 GM과 산은 합의안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지만 양측은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GM이 신차를 개발할 때 개발비는 미국 본사와 나눠 내지만 기술 소유권은 미국 GM이 소유하도록 돼 있다. 대신 한국GM은 기술 사용료를 내지 않는 구조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설 연구·개발 법인이 생기면 이 계약 구조가 달라져, 한국 공장에서 차를 생산할 때 신차 기술에 대한 사용료를 내게 돼 생산 법인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산은 측은 "현재보다 전체적으로 비용 절감을 하는 방향으로 계약을 했고, 이 사안은 한국GM과 미국GM 사이의 계약 문제라 우리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GM이 노조와 어떻게 타협점을 마련하느냐도 관건이다. 한국GM 노조는 이날 "총파업을 포함한 강도 높은 투쟁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가 파업을 벌일 경우 불법 파업에 해당하고, 집행부가 민형사 소송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노조가 파업권을 얻기 위해 중앙노동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했지만, 중노위가 지난달 말 "파업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