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유통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가방을 2~3일만에 택배로 한국에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른바 ‘국경없는 경쟁시대’다. 아마존·알리바바 등 글로벌 기업들의 승자독식 구도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치열한 싸움에 나서는 국내 유통업계의 혁신은 걸음마 수준이다. 여전히 내수에만 전념,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통업계 ‘빅2’인 롯데·신세계가 온라인 사업에 각각 3조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아마존(1995), 인터파크(1996), 롯데·신세계닷컴(1997)은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달랐다. 왜일까.

정동섭 딜로이트 부동산리테일 담당 전무는 그 이유를 두가지로 꼽았다. ‘기술’과 ‘투자’다. 아마존은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공격적 투자를 지속했고, 그 결과 미국 온라인 소비의 40% 장악했다. 이를 기반으로 아마존고, 포스타 등 혁신적인 오프라인 매장을 출점 중이다.

◇ 아마존과 같은 90년대 설립…롯데·신세계, 20년 지나 뒤늦은 고민

반면 국내 최초 인터넷 상거래였던 인터파크, 유통 대기업 인터넷 상거래 서비스였던 롯데·신세계닷컴 등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온라인·오픈마켓의 싸구려 이미지가 백화점의 고급 이미지에 반한다는 판단에서다.

정동섭 딜로이트 전무

정 전무는 "인터파크, 롯데닷컴이 설립된 지 20년이나 됐다"며 "알리바바는 10년만에 성공했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해외 사업에 뒤처져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서야 롯데쇼핑(023530)은 롯데닷컴을 흡수합병해 이커머스 사업본부를 신설했고, 신세계(004170)는 내년 온라인 법인을 신설해 공격적으로 전자상거래를 강화할 계획이다.

그는 "아마존은 신용상태가 취약하다는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의 비판에도 공격적 투자를 지속했다"며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업의 본질과 사업에 대한 철학이 부재해 20년이 지나 뒤늦은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마존의 가장 큰 무기는 ‘원천기술’이다. 아마존이 올해 처음 선보인 무인(無人) 수퍼 '아마존고(Amazon Go)'는 카메라로 습득한 영상 정보를 학습해 자동으로 결제를 진행하는 ‘저스트 워크아웃(Just Walk Out)' 기술을 개발해 적용했다. 아마존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공격적 투자는 유통의 ‘핵심 소비자’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의 니즈(요구)를 이해하고 충성도(로열티)를 확보하는 데 적중했다.

밀레니얼은 2020년부터 X세대의 소비능력을 뛰어넘어 2035년까지 가장 많은 구매력을 보유한 세대다. 전세계 밀레니얼 세대는 약 24억명. 미국 내 7500만명이 있는데, 2028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1112만명으로 21.7%를 차지, Z세대 인구(14.2%)를 상회한다.

◇"원천기술 확보해 밀레니얼세대 충성도 높여야"

이들은 소비가 ‘소유’(I am what I own)에 집중된 부모 세대와 달리 소비 행위를 ‘경험’(I am what I do)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일상 속 즐거움과 모험을 주는 작은 사치를 향유한다.

정 전무는 "밀레니얼세대는 백화점 주요 고객인 중장년층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돈을 많이 쓰는 중장년층도 라이프스타일의 패러다임 변화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며 "기술발전 자체가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전세계 밀레니얼 비중

밀레니얼세대의 로열티를 높이기 위해선 원천기술 확보가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기술발전으로 고객 편의성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원천기술이 없다면 도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치열한 원천기술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선점하는 곳이 미래의 온라인 세계를 장악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페이스북은 얼굴 인식 AI 기술을 가진 페이스닷컴 등 6개 기업을 인수했고, 아마존도 AI를 활용한 스마트홈 스타트업인 링(Ring)을 10억달러에 인수하며 인재·기술 선점에 주력하고 있다. 구글은 영국의 딥마인드 등 11개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데 40억달러(약 4조3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중국 알리바바도 AI 분야에만 향후 150억달러(약 16조112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반면 국내 유통업체는 지난 20년간 온라인·오프라인에서 확보한 원천기술이 전무하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쿠팡 등 주요 기업들이 원천기술을 확보해 경쟁사들이 뒤따라 오지 못하도록 ‘초격차’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 전무는 "아마존은 아직 유통부문에서 적자지만, 기술발전에 따라서 지점을 늘려나가면서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강화되는 승자독식 구도에서 우리 유통사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원천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합병(M&A) 하거나 양질의 기술자를 확보·양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