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한식 세계화'를 외치지만, 이런 식으로 규제를 하면 시장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생계형 적합업종'이 시행되면서 국내 식품업계의 고민이 커졌다. 대기업의 진출과 사업 확장을 금지하는 73개 생계형 적합업종 가운데 김치, 장류 등이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내수 식품 시장 경쟁력이 약화되고 '한식 세계화'도 발목 잡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13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정 대상은 기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는 업종·품목이다.

심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품목은 대기업이 5년간 사업을 확대하거나 진입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며, 시정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전체 매출액의 5%까지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식품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소상공인 보호라는 취지는 살리지 못하고, 내수 시장 위축과 수출 경쟁력 약화 등의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치가 대표적이다. 김치는 국내 시장부터 값싼 중국산에 밀리는 상황이다. 세계김치연구소에 따르면 1조원대에 달하는 국내 기업간 거래 김치 시장에서 중국산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중국산 김치 수입이 매년 증가하는 상황에서 규제가 적용되면 국산 김치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27만톤을 넘어선 반면, 김치 수출량은 2만4000톤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될 경우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치 수출을 주도하는 식품 대기업 입장에서는 '한식 세계화' 대표 품목인 김치가 규제 대상이 되면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치 세계화를 하려면 연구개발(R&D), 냉장 유통망 등 인프라, 대량 생산이 가능한 설비 등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영세 소상공인의 자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김치 생산업체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부터 투자가 막혀 성장이 정체되면 수출은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식품업계에서는 김치가 막걸리와 두부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11년 두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대기업의 국산 콩 투자가 끊기자 콩 재배 농가가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으로 안정적으로 김치를 생산하는 대기업에 배추를 공급하던 국내 배추 농가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막걸리도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이후 대기업의 진출이 막히면서 시장이 축소됐다. 막걸리 출고량은 2011년 45만8198㎘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42만6216㎘로 감소했다. 수출액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뒤늦게 2015년 막걸리를 중기 적합업종에서 제외했지만 아직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 식품업체 관계자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대기업과 영세 소상공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라면서 "오히려 중국을 포함한 해외 업체들에게 내수 시장을 내주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부 지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도 있다. 현행 적합업종 기준은 사업체 규모와 소득의 영세성, 안정적인 보호의 필요성,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반영하고 있다. 사업체 규모와 소득의 영세성을 판단하려면 매출과 영업이익을 참고해야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 등 명확한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동반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세부 품목 지정은 소상공인단체의 신청을 받은 뒤 여러 단계의 심의를 거친 뒤 정할 예정"이라면서 "결과는 내년 상반기쯤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