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비 횡령 의혹으로 사상 초유의 '직무정지' 위기에 놓인 신성철 KAIST 총장의 직무정지를 결정할 이사회가 14일 열린다. 이사회 결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계는 KAIST 이사회에 몇 이사 멤버들이 석연치 않게 합류했다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어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KAIST 이사회에 대한) 신성철(사진) 총장 직무정지 요청과 검찰 고발, 신성철 총장의 해명 기자회견, 의혹 파트너인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한국 정부 의혹 반박 보도 등이 잇따른 가운데 KAIST 이사회는 14일 정기 이사회에 신 총장 직무정지 여부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다. 현재 KAIST 이사회는 신 총장을 포함해 총 10명으로, 당사자인 신 총장을 제외한 이사 9명 중 과반이 직무정지 요청에 동의하면 신 총장은 직무가 정지된다.
◇ 이사회 멤버 9명 중 3명이 40대..."굉장히 이례적인 일"
과학계 일각에서는 일부 이사회 멤버가 2018년 6월 한꺼번에 합류한 사실을 거론하며 '전 정부 기관장 찍어내기' 시나리오에 짜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KAIST 이사회에는 KAIST 교수(73년생)와 DGIST 부교수(80년생), 변호사(74년생) 등 3명이 한꺼번에 합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과학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역대 KAIST 이사들 중 40대 멤버가 포함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지금 과기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뤄지는 과학기술계 기관장 교체가 이번 정부에서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달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의 돌연 사임으로 정부의 과학기술계 기관장 물갈이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정부 들어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한국창의재단 이사장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주요 기관장 교체가 이뤄졌고, 이른바 TK인사로 분류되는 신성철 KAIST 총장까지 DGIST 총장 시절의 의혹을 제기하며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 또다른 인사는 "새로 합류한 KAIST 이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선임됐는지 알 수 없으니 굉장히 이례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기관장 물갈이 시도가 도를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 KAIST 교수 포함 과학자들 665명 신 총장 직무정지 반대 성명 발표
과기계의 이같은 불만이 고조되자 KAIST 교수들 205명을 포함한 과학기술인 665명이 과기정통부의 신성철 총장 직무정지 요청 거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11일 발표했다.
앞서 KAIST 교수들은 지난 12월 7일 오전 9시부터 과기정통부가 KAIST 이사회에 요청한 총장 직무정지 거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신 총장에 대해 제기된 몇몇 의혹들은 거대연구시설을 활용한 국제공동연구의 통상적 절차에 근거해 이해할 수 있는 사안임을 지적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기정통부가 제대로 된 조사와 본인의 소명 없이 서둘러 밀어 붙이고 있다는 오해를 사고 있다"고 밝혔다.
또 "불분명한 의혹과 성급한 판단으로 국제적 지명도와 국가적 기여도가 큰 과학계 리더에게 KAIST 개교 이래 최초의 직무정지 총장이라는 굴레를 씌운다면 앞으로 과학계에 헌신할 연구자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 과기정통부 vs 신성철총장·LBNL 진실공방 점입가경
신 총장 관련 의혹은 크게 2가지다. 신 총장이 DGIST 총장 재직 시절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공동 연구 계약에서 LBNL에 주지 않아도 될 연구비를 지불했다는 의혹과 LBNL로 넘어간 연구비가 당시 LBNL 연구원으로 있던 신 총장 제자 인건비로 쓰였다는 의혹이다. 과기정통부는 이 2개 사안을 두고 직무정지 요청과 검찰 고발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신 총장은 지난 12월 4일 대전 KAIST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며 적극 반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국내 한 과학매체는 LBNL에 직접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한 답변을 공개해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됐다. LBNL은 신 총장의 의혹에 대해 "LBNL과 DGIST의 계약은 미국 법령과 규정을 따랐고 연구 장비 사용 관련 상위 감독 기관인 미국 에너지부의 승인도 받았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계약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LBNL은 또 DGIST가 송금한 연구비가 신 총장 제자 인건비로 쓰였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LBNL 소속 연구원의 인건비는 별도 자체 규정에 의해 지급되고 있으며 연구원 인건비 관련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같은 LBNL의 답변에 대해 과기정통부는 "검찰 조사에서 밝혀질 일"이라며 원론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과학계 한 관계자는 "만일 DGIST가 계약한 파트너가 아프리카와 같은 개도국 연구소라면 개연성이 있을 법도 하다"며 "미국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현재 과기정통부가 제기한 의혹대로 연구 계약을 했다는 건 미국 상위권 대학의 연구소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