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이하 삼바) 분식회계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삼바가 회계기준을 고의 위반 했다고 발표하면서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이 지난달 21일 관련 수사에 착수했고, 한국거래소는 삼바 상장폐지 심의에 돌입했다.

시가총액 22조1300억원(11월 14일 종가 기준)에 이르는 삼바가 상장폐지될 경우 8만여명의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 합병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이슈에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삼바 측은 결사 항전을 벌일 태세다. 지난달 27일 증선위의 시정요구 등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본안 판결 이후까지 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증선위 결정에 영향을 준 내부 문건에 대해서도 "검토 진행 중인 내용을 담은 문건이었다. 모든 회계처리를 회계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했다고 확신한다"고 반박하며 치열한 법정 다툼을 예고했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전경.

회계 전문가들은 ‘2012년 삼바와 합작해 에피스(이하 에피스)를 설립한 미국 바이오 회사 바이오젠의 동의권’이 향후 진행될 행정소송의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의권에 대한 삼바와 증선위의 해석이 첨예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조선비즈는 2017년 10월과 12월 삼바의 의뢰로 회계 전문가들이 작성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삼바 회계 처리 의견서(동의권 관련)를 단독으로 입수, 이를 집중 분석했다.

① 왜 동의권인가

증선위는 지난달 14일 삼바 감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제품 추가, 판권 매각 등과 관련해 바이오젠이 보유한 동의권 등을 감안할 때 ‘계약상 약정에 의해’ 지배력을 공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신제품을 추가하거나 판권을 매각하려면 바이오젠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 바이오젠도 지배력을 가졌다고 본 것이다. 2012년 에피스 설립 합작계약서(Joint Venture Agreement)엔 바이오젠의 동의권 10가지가 포함돼 있었다. 증선위는 이 중 신제품 추가, 판권 매각 관련 동의권을 ‘공동지배권’으로 해석했다.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공동지배(지배력을 공유)한다고 보면 2015년 삼바의 회계처리(평가차익 인식)가 잘못됐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과거의 잘못된 회계처리가 2015년 회계 기준 위반의 전제가 되는 셈이다. 증선위는 회계처리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도 삼바가 고의적으로 이 방법을 적용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삼바 측은 동의권이 지배력과 관계없는 ‘방어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의권은 통상적인 합작계약서에 들어가는 소수 주주권으로서 경영 의사 결정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삼바 관계자는 "합작사인 에피스가 바이오젠의 경쟁제품을 출시할 경우 바이오젠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동의권을 설정했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삼바와 바이오젠이 체결한 합작계약서(JVA)에 포함돼 있는 10가지 동의권 조항. 증선위는 이 중 신제품 추가, 판권 매각 조항(붉은색 표시)을 고려할 때 바이오젠과 삼바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공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선비즈가 단독 입수한 이 의견서는 대학 교수,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회계 전문가들이 작성했다.

② 적자에서 1조9000억 흑자로

동의권을 방어권으로 보느냐 공동지배권으로 보느냐에 따라 회계처리 방식은 크게 달라진다. 바이오젠이 동의권을 바탕으로 에피스를 공동지배했다고 판단할 경우 삼바는 에피스를 공동기업으로 분류해야만 한다. 공동기업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은 당기순손익을 보유 지분율만큼 반영하는 지분법 회계다.

하지만 삼바는 2012년 에피스를 설립한 이후 2014년까지 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분류해 연결회계로 처리했다. 설립 당시 삼바가 에피스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었고, 바이오젠이 가진 동의권도 일반적인 경영 활동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방어권이기 때문에 에피스를 단독지배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바의 회계처리에 변화가 생긴 건 2015년이었다. 삼바는 바이오젠이 보유하고 있던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종속기업이었던 에피스를 공동기업으로 변경했다. 콜옵션을 행사하면 에피스에 대한 바이오젠의 지분율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지배력 변동이 생긴다. 바이오젠은 2012년부터 에피스 지분 ‘50%-1’을 확보할 수 있는 콜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2015년의 회계처리 변경으로 적자 기업이었던 삼바는 한순간에 흑자기업이 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던 삼바는 2015년 1조9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종속기업이었던 에피스를 공동기업으로 전환하면서 공정가치로 재평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에피스의 공정가치는 5조2700억원(지분 100% 기준)으로 평가됐는데, 이 중 4조5400억원(공정가치에 지분율 91%를 곱한 후 에피스 순자산액을 뺀 값)이 평가차익(종속기업투자이익)으로 삼바 손익계산서에 반영됐다.

증선위는 이에 대해 "2012년~2014년 에피스를 공동지배한 것으로 보면 2015년 대규모 평가차익을 인식한 건 잘못"이라고 밝혔다. 애초에 에피스를 공동기업으로 분류했다면 2015년에 지배력 변화가 없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평가차익도 반영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바 3공장 전경.

③ "바이오젠 이익 보호·예외적인 상황…방어권으로 봐야"

삼바가 동의권을 방어권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이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방어권의 개념과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제1110호는 방어권을 ‘당사자에게 방어권과 관련된 기업에 대하여 힘을 갖게 하지는 않지만 방어권을 보유하고 있는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방어권은 ‘피투자자의 활동에 미치는 근본적인 변화와 관련되거나 예외적인 상황에 적용된다’고 명시하고(문단 B26) 있다.

회사의 근본적인 사업내용, 구조 변화를 초래하는 의사결정으로 당사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권리라면 방어권이라는 얘기다. 삼바와 바이오젠의 합작계약서에 명시된 동의권이 예외적인 상황 혹은 소수주주(합작계약 당시 에피스 지분 15% 보유)였던 바이오젠의 이익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방어권으로 해석할 수 있다.

회계학자 A교수는 의견서를 통해 "신제품 추가에 요구되는 투자지출(2012년~2013년 에피스 총자산의 80% 수준)은 통상적인 영업수행 과정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며 "신제품 추가는 근본적인 변화나 예외적인 상황과 관련된 활동이기 때문에 바이오젠의 동의권은 K-IFRS에서 제시한 방어권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설립 초기 바이오 회사의 특성상 신제품 추가는 정기적이며 빈번하게 발생하는 활동이 아니라는 설명도 붙였다.

다른 회계 전문가는 실제 신제품 추가 사례를 제시했다. 에피스는 2012년 설립 시 6종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2014년 최초로 란투스라는 신제품을 추가하면서 바이오젠의 동의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신제품 추가 관련 소요 자금은 9000만달러로 주총 승인 필요 기준(6000만달러 이상 자산 취득)을 넘어서는 예외적인 상황이었다"며 "이는 근본적인 변화에 해당하기 때문에 바이오젠의 동의권은 확실하게 방어권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그는 "바이오젠이 지명한 이사는 에피스 설립 후 이사회에 단 4회만 참석했다"며 "이 점을 봐도 바이오젠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금감원에 제출된 의견서 결론(위), 지난해 12월 금감원에 제출된 의견서 일부(아래). 합작계약서에 포함된 바이오젠의 동의권은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결정이나 통상적인 영업수행을 벗어나는 자본 지출을 막는 방어권에 해당된다고 밝히고 있다.

④ 금융당국 "종합적 판단"…콜옵션 실질 권리 판단도 쟁점

금융당국은 삼바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종합적인 정황 고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에피스 설립 초기(2012년~2014년) 바이오젠의 동의권을 방어권으로 보느냐 공동지배권으로 보느냐에서 더 나아가 이를 토대로 삼바 측이 2015년 진행한 회계 처리에 고의적 의도나 무리수가 없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증선위는 삼바 감리 결과를 발표하며 2012년·2013년 회계처리 기준 위반은 과실, 2014년은 중과실, 2015년은 고의 위반으로 결론 내렸다. 2012년~2014년 회계처리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증거자료와 당시 회사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2015년엔 의도적이고 확실한 위반이 있었다는 판단이다.

손영채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은 "신제품 개발·판권 매각 관련 동의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고 하기 어려워 과실로 판단했다"며 "하지만 콜옵션 등 종합적인 정황을 보면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공동지배할 수밖에 없던 구조였다"고 했다. 박권추 금융감독원 회계전문위원 역시 "동의권 부분은 삼바가 증선위에서도 충분히 진술을 했다"며 "고의 위반 결정은 삼바 측에 충분한 진술 기회를 제공한 후 종합적인 정황을 바탕으로 결정된 사안"이라고 했다.

바이오젠이 보유하고 있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언제 높아졌느냐도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에피스의 기업가치가 높아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지배력에 변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삼바 측은 바이오시밀러 제품 국내 판매 승인 등으로 인해 2015년에 에피스 기업가치가 높아졌고, 콜옵션 행사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증선위는 "콜옵션 행사에 장애요소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지배력 결정시 고려해야 하는 실질적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12년부터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에피스를 공동지배로 분류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사안이 복잡하고 검찰 수사도 진행되고 있는 만큼 법원이 삼바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본안 소송이 끝날때까지 제재 집행은 미뤄진다. 한 회계 전문가는 "행정소송에서 동의권, 콜옵션 등이 또 한번 쟁점이 될 것"이라며 "삼바 내부 문건의 증거 능력 등 따져야할 사안이 많기 때문에 재판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