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매출 2위 제약사 GC녹십자는 내년 상반기 중 자사 면역결핍증 치료제(IVIG-SN)에 대한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FDA가 생산 공정 관련 자료 보완을 요구하면서 허가일정이 늦춰졌지만 불확실성이 대부분 해소됐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캐나다에 연간 100만L 생산 규모의 혈액 제제(혈액 성분으로 만든 의약품) 공장을 세웠고 미국 혈액 제제 원료 공급 시설도 지난달까지 10곳으로 늘렸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은 자체 개발한 신약을 들고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진출에 나서고 있다. 1~2년 내 미국에서 허가받을 가능성이 높은 신약만 10여개에 이른다. 사진은 유한양행 연구원이 신약 물질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국산 신약을 앞세워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복제약을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직접 신약을 개발해 제약 산업의 본거지인 미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2020년까지 미국에 허가받을 가능성이 높은 국산 신약은 GC녹십자 신약을 포함해 10여개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이 신약들의 경쟁 제품이 미국에서 연평균 3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 진출에 성공할 경우 30조원의 시장이 새로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시험 중인 바이오 벤처들의 신약 후보 물질까지 감안하면 미국에 진출할 국산 의약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최근 FDA에 허가 신청한 신약들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3단계 임상시험을 모두 마쳤기 때문에 효능과 안전성은 검증된 상태"라며 "통상 FDA에 신약 신청서가 제출됐다면 90% 이상 허가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성 높은 중증 질환에 집중

미국 시장을 두드리는 국산 신약들은 간암이나 뇌전증, 혈액 질환처럼 글로벌 기업도 개발하기 어려운 중증 질환이나 환자가 많아 시장성이 높은 질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출시에 성공할 경우 시장 파급력이 이전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2003년 LG생명과학(현 LG화학)의 항생제 팩티브 이후 국산 의약품 9개가 미국에서 허가를 받았지만 대부분 항생제,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등 상대적으로 경미한 질환이거나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많았다.

한미약품은 유방암 환자의 면역결핍증을 치료하는 '롤론티스'가 내년 상반기 중 FDA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웅제약의 주름 개선 치료제 '나보타'도 내년 상반기 중 허가를 받고 앨러간의 원조 의약품 '보톡스'와 2조원의 미국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차바이오그룹 계열사인 CMG제약은 조만간 FDA에 조현병(정신분열증) 신약 '아리피프라졸 OTF'의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다. 미국 조현병 치료제 시장은 8조원 정도다.

최근에는 기술 수출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나왔다. SK㈜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은 지난달 뇌전증(간질) 치료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판매 허가 신청을 마쳤다.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에 기술 수출하지 않고 직접 판매 허가까지 신청한 것은 처음이다. 바이오 벤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내년 6월 미국에서 당뇨병성 신경병증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모두 마치고 FDA에 판매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김선영 바이로메드 대표는 "미 FDA에서 먼저 우리 측에 신약 관련 데이터를 요청할 정도로 현지에서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라젠도 현재 미국에서 간암 치료제 '펙사벡'의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현지 연구소 설립도 늘어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활발해진 배경에는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연구·개발(R&D) 투자가 있다. 동아제약, 종근당, 한미약품 등 상위 제약사들은 연 매출의 10% 이상을 신약 개발 R&D에 쏟아붓고 있다. 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13년 9786억원이었던 국내 제약업계 R&D 투자 비용은 지난해 1조8379억원까지 늘었다.

기업들은 R&D의 현지화를 위해서도 발 빠르게 뛰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 1위 유한양행은 지난 3월 미국 샌디에이고에 R&D 법인 '유한 USA'를 설립했고, 보스턴에도 연구 법인을 세울 계획이다. JW중외제약과 대웅제약도 미국에 설립한 신약 연구소를 통해 현지 R&D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서 바이오 산업이 반도체에 이어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며 "미국 진출을 앞둔 신약은 대부분 상업적 성공 가능성도 높아 향후 1~2년이 국내 제약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