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을 상대로 부품 밀어내기 등 ‘갑(甲)’질을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모비스(012330)법인과 전(前) 대표 등 임원을 형사고발한 사건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법집행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형사고발을 확대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방침이 일반 형사범죄와 달리 위법성을 특정하기 어려운 공정거래법 특성을 무시한 탁상공론이었다는 게 주요 비판 요지다. 형사처벌 확대를 강조한 김 위원장 취임 이후 공정위 조사가 부실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현대모비스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검찰에 제시한 증거는 거의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측에서는 형사처벌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을 고발 조치했다는 불만도 감지된다. 공정위가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에 휘둘려 형사고발 등을 남용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 공정위 형사고발, 檢 ‘범죄 특정할 수 없다’로 응수

공정위의 현대모비스 법인 및 임원 고발은 올해 1월 22일 김상조 위원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처리지침 발표 후 첫번째 기업 사건이었다. 공정위는 사건 처리 지침에서 예고한대로 현대모비스 법인과 전 모 대표이사와 정 모 부사장(부품영업 본부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조선일보DB.

현대모비스 본사 차원에서 전년대비 3~4% 이상이라는 판매 목표를 세워서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식 영업을 유도했고, 대리점주협의회 등을 통해 영업소 차원의 밀어내기 영업 실태를 본사가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며, 현대모비스 자체 감사 등에서도 밀어내기 영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점 등을 비춰볼 때 형사고발에 필요한 요건인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게 공정위측 판단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공정위 측이 제시한 증거들이 형사처벌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형벌을 부과하려면 피해대리점을 특정해야 하는데 공정위가 제출한 고발장에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게 검찰측 설명이다. 공정위는 조사대상 445개 중 65개(14.6%) 대리점이 원치 않은 부품을 구입했다고 답변한 설문조사 결과와 현대모비스의 부품 구입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줬다는 방문조사 시 진술자료 등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검찰 수사 과정 중 참고인으로 진술한 대리점주들이 모두 ‘피해를 본 적이 없다’는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가 대리점 측에 강제로 떠넘긴 부품 매출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고발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대리점 측에 강제로 떠넘긴 부품으로 인한 매출과 정상적인 거래로 인한 매출이 구분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검찰은 공정위 측에 강제 판매에 해당되는 매출을 특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공정위는 추가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은 강제적인 물량 밀어내기가 없었다는 현대모비스 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현대모비스 본사와 대리점 사이의 거래내역 원자료부터 정상매출과 밀어주기 매출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공정위가 전체거래 자료를 바탕으로 밀어내기 매출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이 때문에 정액 5억원 과징금을 부과하는 행정처분을 내리고, 밀어내기 영업을 회사 차원에서 고의적으로 지시한 정황을 근거로 형사처벌이 가능한 지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에 고발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 김상조식 고발확대 방침에 비판…"공정거래법과 맞지 않아"

업계에서는 경제법인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형사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김상조 위원장의 접근법이 법집행 현실과 맞지 않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경쟁적인 시장 구조를 위협하는 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공정위 행정제재와 달리 검찰의 형사처벌은 행위 자체의 위법성을 문제로 삼는다. 형사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처벌 대상자의 위법 행위가 구체적으로 확정돼야 한다는 얘기다. 정황만으로는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한 로펌 변호사는 "공정위가 처벌 근거로 내세운 공정거래법 23조 4조의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구입 강제 행위’는 강제로 할당한 매출이 존재해야 위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조항"이라며 "공정위가 관련 매출을 특정하지 못했다면 형사처벌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 위반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행정소송에서도 승소를 자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공정위 측 주장을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김상조 위원장이 검찰 고발을 지나치게 정무적인 관점에서 다룬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공정위는 그동안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시민단체와 현 여권에서 많이 받았다.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공정위가 온정주의적이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기업에 대한 형사고발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공정위 고발이 없어도 검찰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권 폐지에 동의한 것도 현 여권과 시민단체 요구에 부응하려는 측면이 컸다.

현대모비스 법인 및 임원진 형사고발 조치를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신봉삼 당시 공정위 시장감시국장(현 기업집단국장).

◇"정치적 의도로 고발 남발하면 공정위 신뢰만 저하"

현대모비스 부품 밀어내기 사건에 법인 및 임원 고발이 결정된 것도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달라진 분위기 영향이 컸다.

이 사건은 2016년말 채규하 사무처장이 시장감시국장 재임 시 검찰 고발 없이 과징금을 부과 처분하는 방향으로 전원회의에 상정됐지만, 작년 1월 시장감시국장으로 부임했던 신봉삼 기업집단국장이 법인 및 임원에 대한 검찰 고발을 하는 방향으로 처분 내용을 수정해 재상정했다. 사건을 추가 조사한 결과 증거가 당초보다 2배 더 많이 수집돼 처분 방향을 변경한 것이라고 당시 실무진은 전했다. 현직인 신영호 국장은 이미 상정된 사건의 전원회의 의결과 검찰 수사 지원 등만 처리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김 위원장이 형사고발을 독려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사건 처분 방향이 과도하다는 이야기를 못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식으로 처리된 사건들이 검찰로 넘어가 무혐의 처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조사 건이 대표적이다. 공소·처분시효가 끝나 무혐의로 결정했던 사건을 공정위가 재조사해서 결국 형사고발했지만, 검찰은 지난 4월 기각 결정을 내렸다. 형사처벌에 필요한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 내부에서도 공정위가 중립성을 지키며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른 로펌 변호사는 "공정위가 법집행을 적극적으로 한다면서 고발을 남발하더라도 사건 처리를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하면 검찰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이 빗발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공정위의 사건처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