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 유가 상승을 전제로 유류세를 내렸는데, 국제 유가가 연일 급락해 정부의 부실한 정책 운용 및 경제 예측 능력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선심성 정책을 조급하게 쓰는 바람에 2조원대 세금 낭비와 더불어 위기 때 써야 할 비상용 카드 하나를 허망하게 날려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달 6일부터 6개월간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15% 인하했다.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 영세 상공인, 중소기업, 서민 등에게 압박이 될 수 있다. 유류세 인하로 가처분소득을 조금 늘리면 경제 활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 후 미·중 무역 갈등이 세계경제를 둔화시켜 원유 수요 감소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 등이 확산되면서 국제 유가는 큰 폭의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23일에는 8개월 만에 최저치인 61.08달러까지 떨어졌다. 유류세 인하 직전인 지난 5일과 비교하면 두바이유 가격은 14.2% 급락했다. 원유 선물 가격은 더 떨어져 지난 23일 기준, 내년 1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날 대비 4.1달러(7.7%) 폭락해 배럴당 50.42달러에 마감했다. 게다가 국제 유가 하락 효과가 국내 유가에 제대로 반영되지도 못하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분과 유류세 인하분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15%가량 가격 인하 요인이 생겼지만, 이 기간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1690.3원에서 1527.85원으로 9.6% 내리는 데 그치고 있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최근 유류세와 국제 유가 인하 폭을 감안하면 국내 유가 인하 폭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정부의 엇박자 대책 때문에 유류세 인하 혜택이 서민보다는 대기업과 주유소에 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10년 만에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내자 당시에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유류세 인하는 대규모 조세 지출로 재정에 부담을 안겨 이전 정부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았던 정책 카드이다. 또 유류세 인하 효과가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는 고소득층에 집중되므로 저소득층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보완책을 마련하려면 복잡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유류세 인하를 강행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결정할 당시 국제 유가가 80달러대로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고, 올해 4분기를 고점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며 "경기 하강에 다급해진 정부가 유류세 인하라는 최후의 카드를 너무 빨리 꺼내 든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유류세 인하는 내년 예산안 심사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이후 뒤늦게 결정한 유류세 인하 등으로 4조원가량의 세수 결손이 발생하자 야당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면서 22~2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공전했다.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4조원의 국세가 펑크가 나는데 그걸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