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표방하면서 대기업과 공기업 등이 잇달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협력업체 직원들을 본사가 직접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공기업들은 대부분 자회사를 설립해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직원들의 명함만 바꿔주는 것이라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066570)도 전국 130여개 서비스센터에서 근무하는 협력업체 직원 약 3900명을 직접 고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도급 계약으로 협력업체 직원들을 서비스 기사로 운용했는데, LG전자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LG전자 직원 수는 작년 말 기준 총 3만7653명으로 이들의 평균 연봉은 7900만원이었다. 단숨에 전체 직원을 10% 이상 늘린 것이다. LG전자는 "양질의 일자리 확대라는 정부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지난 16일 청와대 앞 도로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달 2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 약 8700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약 7800명의 애프터서비스 협력사 직원들은 내년 1일 1일자로, 약 900명의 콜센터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달 5일자로 삼성전자서비스의 100%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 CS에 입사한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직원들의 급여와 복리후생이 협력사 근무 시절보다는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말까지 계열사에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직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직원 86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공기업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 자회사를 설립해 그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해 '무늬만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동·중부·남부·서부·동서발전 등 한국전력(015760)의 발전 자회사 5곳은 지난달 일제히 이사회를 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자회사 설립 출자안을 승인했다.

그동안 아웃소싱 업체에 외주를 줬던 사옥 경비 및 청소 업무를 담당할 자회사를 만들고 협력업체 직원을 자회사 소속으로 바꾸는 것이다. 자회사 직원의 처우는 본사 직원의 처우와 다르고, 하는 업무는 기존과 똑같다. 이 때문에 '자회사 정규직' 전환은 직원의 명함만 바꾸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 작년 7월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직원을 '자회사 정직원'으로 채용한 SK브로드밴드의 경우, 홈앤서비스 직원 대부분은 자신을 정규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홈앤서비스 직원 895명으로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자신을 정규직으로 인식하는 노동자는 10.3%에 그쳤다. 자신이 정규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본사 직접 고용이 아니다'(56.4%)가 가장 많았고 임금 및 복리 후생이 기대수준에 미달(25%)하거나 임금체계가 불안정(13.7%)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경비·청소 업무의 경우 '자회사 정규직'이 되면 정년이 짧아져 오히려 일하는 기간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있다. 아웃소싱 업체의 경우 대부분 정년이 없어 본인이 원할 때까지 일할 수 있는데, 자회사의 경우 본사의 기준을 따라야 해 60~65세를 정년으로 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대기업이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본사로 입사한 사람과 나중에 정규직이 된 사람 간 형평성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