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양극화 수준을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이 노무현 정부 집권 마지막해(2007년) 이후 11년만에 가장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두자릿수 최저임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저소득층 일자리를 대거 소멸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전면적인 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소득기반을 확충해 내수소비를 진작해 경제성장의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이 오히려 서민들의 소득기반을 허물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저소득층 소득기반을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판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3분기 소득분배지표 악화 등에 대해 "분배악화가 완화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회피하기 위해 경제상황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저소득층 일자리 없앤 최저임금 인상

22일 발표된 통계청의 3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소득 상하위 격차를 나타내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52배로 3분기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를 나타냈다. 1분위 가구(소득 기준 하위 20%)의 월평균 근로소득이 통계 작성 후 가장 큰 폭인 22.6%(전년대비) 감소한 것이 주된 영향이었다.

사진=조선일보DB

경제전문가들이 3분기 소득분배 지표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 고용시장이 일용·임시직 위주의 미숙련 일자리과 정규직 중심의 숙련 일자리로 이중구조화됐다는 점을 간과하고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올렸다는 지적이다. 올해 16.4%의 최저임금이 인상이 결정됐을 때부터 음식·숙박업과 일용·임시직 중심의 미숙력 취업자 급감이 예고됐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3분기 소득 분위 별 근로자수 등을 보면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3분기 0.83명과 1.31명이었던 1, 2분위 가구의 근로자수가 올해 3분기에는 0.69명과 0.83명으로 각각 16.8%와 8.2%씩 감소했다. 반면, 중산층 이상인 3분위 부터는 가구 내 근로자수가 증가했다. 3분위 가구 근로자수는 1.54명으로 전년(1.50명)보다 2.6% 증가했고, 4분위는 1.80명으로 전년(1.78명)보다 1.3% 늘어났다. 5분위 가구 근로자수는 2.07명으로 전년(2.0명)으로 전년대비 3.4% 증가했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은 "고령자 비중이 높은 소득 1,2분위 등 저소득층은 숙련도가 낮기 때문에 임시·일용직 등 외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는 특성이 있고,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 일자리는 숙련도 위주인 정규직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시장이 이중구조화된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시장이 수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리면 외부 노동시장의 미숙련 일자리 중심으로 고용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은데,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이 지점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케어, 비소비지출 급증…"가처분 소득 감소"

가계의 비소비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세금과 대출금 이자비용,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은 지난 3분기 106만5000원으로 전년대비 23.3% 증가했다. 비소비지출이 100만원을 돌파한 것은 2003년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각종 세금부담을 보여주는 경상조세는 34.2%, 대출 이자비용 지출은 30.9%, 사회보험은 13.5%, 연금지출은 12.6%씩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사회보험료 등 공적비소비지출이 크게 증가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 등 소득주도성장 차원에서 실시된 사회복지 서비스 확대가 공적비소비지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보험료율은 지난해 6.12%에서 6.24%로, 장기요양보험요율은 6.55%에서 7.38%로 증가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각종 공적 사회보장 서비스 확대는 수혜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광범위한 계층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측면도 있다"면서 "소비 등 경제활력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사회보장 서비스를 확대하는 균형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재부 "정부노력으로 소득분배 악화세 둔화되고 있어"

3분기 소득분배지표 악화에 대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소득지표 악화에도 불구하고 상하위 계층의 소득격차가 다소 완화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배포,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과 고용부진 등으로 분배악화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정부 정책노력 등에 힘입어 악화세는 점차 완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득 5분위 배율 상승폭이 1분기 0.6%포인트(p·5.35 →5.95%), 2분기 0.5%p(4.73→5.23%)에서 3분기 0.34%p(5.18%→5.52%)로 줄어들었다는 게 이 같은 주장의 근거다.

또 기재부는 "앞으로 정부의 일자리․저소득층 지원정책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저소득층 소득상황은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에 대해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5분위 배율이 높아졌다는 것만으로 불평등이 악화된 것인데, 확대폭이 둔화됐다는 근거로 상황이 개선됐다고 진단하는 것은 코미디 수준"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유경준 교수는 "내년도에 최저임금 10.9% 인상이 예고된 상황이기 때문에 저소득층 비중이 큰 미숙련 일자리가 늘어나기 힘든 구조"라면서 "소득분배 개선을 자신할 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