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최근 국내 은행의 통신망(網)과 지하철 통신망 사업을 잇따라 수주하며 국내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화웨이는 5G(5세대 이동통신)에서는 LG유플러스의 일부 지역에 대해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데 그쳤지만 기업과 은행 등 유선망을 중심으로 사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2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달 초 NH농협은행의 전국 6000여 지점을 잇는 통신망 개선 사업의 장비 납품 업체로 선정됐다. 화웨이가 국내 은행권의 통신망에 대규모 장비를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협의 통신망 개선 사업에는 향후 5년간 1200억원이 투자된다. KT가 개선 사업을 총괄하고 화웨이가 각종 장비를 공급한다. 전체 사업비의 절반인 600여억원이 화웨이의 몫으로 알려졌다.

대형 은행들은 통상적으로 5년마다 대규모 통신망 개선 사업을 진행하며, 내년 이후에는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도 개선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이번 농협 사업의 장비 공급자로 선정됨에 따라 향후 조(兆) 단위의 금융 통신망 사업 수주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여기에 화웨이는 작년과 올해에 연이어 지하철 1~4호선과 7~8호선 노후 통신망 개선 사업에서도 장비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각각 69억원과 38억원의 소규모 수주이지만 화웨이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장비 업체의 한 관계자는 "화웨이가 5G 사업에서는 쓴잔을 마셨지만 기업의 내부 통신망이나 은행,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저인망식으로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현재 한국 통신장비 시장의 10% 안팎인 화웨이의 점유율이 무섭게 뛰어오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화웨이는 그동안 유독 한국 시장에서는 약세였지만 전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28%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1위 업체다.

미국·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 정부가 중국산 통신장비를 악용해 개인 통화 정보나 금융거래 정보를 불법 수집할 가능성을 우려해 화웨이 장비 선정을 사실상 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화웨이코리아 측은 "이미 170개 이상 국가에서 자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보안 문제가 터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