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등 대형 조선사들이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가운데, 대형 조선사 협력업체들이 21일 공정위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 협력업체는 "대형 조선사의 갑질이 심각하다. 우리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사해달라"고 주장했다.
협력업체들이 꼽는 대형 조선사의 갑질 유형은 크게 ▲선(先)시공 후(後)계약(서면 미교부 및 불완전 교부) ▲하도급 대금 미지급 ▲시수(時數) 및 공사대금 일방적 결정 등이다. 선시공 후계약은 협력업체가 원청업체의 요구에 따라 미리 물건을 제작하고 나중에 정산받는 것을 말한다. 협력업체는 원청업체가 실제 들어간 돈보다 적은 금액을 줘 손실이 누적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원청 업체의 요구로 100원을 투입해 작업했는데, 돈이 없다며 60~70원만 준다는 것이다.
윤범석 YL에너지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이 작업을 지시할 때 선시공 후계약을 하면서 시수환산표, 수정·추가 작업에 대한 서면 등을 교부하지 않아 하도급법 제3조(서면의 발급 및 서류의 보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필요한 작업을 먼저 시킨 뒤 예산에 맞춰 실제 작업량과 무관하게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윤 대표는 "작업 물량을 얼마의 시수로 환살할 것인지 정하는 시수환산표가 없으면 대금이 제대로 된 것인지 판단이 불가능하다. 협력업체는 대금 산정이 적정한지 판단을 못 하는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인 ㈜효성의 장영수 대표도 "새로운 프로젝트 투입 시 업체가 시공하는 전체 물량에 대한 계약이 없다 보니 당월 예산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고 월말에 계약하는 예산이 모자라면 매번 구걸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대한기업의 김도협 대표는 "올해 6월 직원 임금 등으로 5억6000만원을 썼는데, 현대중공업은 3억3000만원 줬다. 이런 식으로 최근 3년간 빚이 20억원이 쌓였다"고 했다.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납품단가를 무리하게 깎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25개 협력업체는 2001년부터 누적된 피해금액이 총 647억5000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인 ㈜동영코엘스는 현대중공업이 단가를 후려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동영코엘스에 따르면 2015년 2월 3일 현대중공업은 '선박용 배전반 완제품' 연간 물량 일괄입찰 설명회를 열었다. 현대중공업은 1차 설명회 때 연간 발주물량을 800억원 정도로 예상한다고 했고, 약 20일 뒤 열린 2차 설명회 때는 750억원 규모로 설명했다.
㈜동영코엘스는 이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813억7068만원에 입찰했으나, 현대중공업은 594억9875만원을 '구매 목표금액'으로 제시했다. 결국 ㈜동영코엘스는 528억원으로 재입찰해 낙찰 받았다. 그러나 그해 현대중공업이 실제 발주한 물량은 약 350억원에 그쳤다.
이원태 ㈜동영코엘스 대표는 "'나중에 보전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528억원에 입찰했는데, 물량도 350억원 어치 밖에 안됐다. 고구마를 살 때도 한 봉지를 사는 것과, 한 박스를 사는 것은 단가가 다르지 않느냐. 물량이 적으니 단가를 높이자고 얘기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가를 올려줄테니 우선 납품하라'고 해 놓고 단가는 올려주지 않아 막대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2014년에 매출액 382억원, 영업이익 27억원을 기록했던 ㈜동영코엘스는 이듬해 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16년에는 영업손실이 195억원으로 커져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형 조선사의 협력업체들은 원청업체의 매출 비중이 거의 100%에 달해 불합리한 요구도 받아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는 "협력업체들은 대부분 원청업체로부터 일감을 못 받으면 바로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손해가 나도 다음을 기약하면서 수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버티다 적자가 누적되면 빚이 쌓이고 결국 문을 닫는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진 느낌"이라고 했다.
대형 조선사들은 협력업체와의 계약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선시공 후계약과 관련해서는 사전 계약을 원칙으로 하되 예상치 못한 작업이 발생할 경우에 정산 개념으로 본계약에 추가 계약을 체결한다고 주장했다. 납품 단가를 무리하게 깎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상적으로 입찰을 진행했고, 협력업체가 그 금액에 맞춰 입찰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