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이하 삼바)의 회계기준 위반에 대해 ‘고의적 분식회계’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계장부를 감사한 회계법인엔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조치를 내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회계법인들이 삼바 분식회계에 적극적 조력자였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며 비판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측에서는 외부감사인은 기업이 제공하는 제한적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기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14일 증선위는 정례회의를 통해 삼바의 고의 분식회계 결론을 발표하며, 삼정KPMG회계법인에 대해 ‘중과실’로 과징금 1억7000만원과 삼바에 대한 감사업무 5년간 제한과 회계사 4명의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다. 안진회계법인은 ‘과실’로 결론짓고 과징금 없이 삼바에 대한 감사업무 3년 제한 조치를 내렸다.

삼정KPMG는 2012~2015년, 안진회계법인은 2016년 삼바의 외부감사를 맡았다.

관련업계에서는 이들 회계법인 징계 수위가 예상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앞서 증선위는 안진회계법인이 2010~2015년 대우조선해양 외부감사를 맡고 있는 동안 2조원대 손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2개월 간 외부감사 업무정지 조치를 내렸다. 이 외에도 과징금 16억원, 손해배상 공동기금 추가 적립, 대우조선해양 5년간 감사업무 제한 조치가 내려졌고 소속 회계사들은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최고 2년 6개월 실형이 확정됐다. 삼바 분식회계 규모나 사건의 심각성이 더 컸다는 점에서 이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의 조치가 예상됐으나 삼정KPMG, 안진 모두 최악의 징계는 면한 것이다.

증선위는 결론적으로 삼바와 감사인들이 분식회계를 공모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감사인이 회계 장부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삼바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탓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삼정KPMG의 경우 삼바-바이오젠의 삼성바이오에피스 합작계약서(JVA) 내용이 삼정KPMG에게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고 보고 삼정KPMG의 부실감사는 고의가 아닌 중과실 수준의 제재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정KPMG나 안진 모두 이번 조치에 대해 "노코멘트"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회계법인이 최악의 조치를 받지 않은 데 대해 만족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회계법인도 중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삼정KPMG와 안진 등 회계법인이 삼바의 분식회계를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주장하는 측은 징계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당초 국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삼바가 분식회계를 하는 과정에서 감사인의 조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삼정KPMG의 경우 바이오젠의 콜옵션 효과를 반영하지 않은 채 산정한 증권사 리포트를 인용해 삼바의 기업 가치를 부풀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반면 회계업계에서는 증선위 처분이 여러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 공인회계사는 "안진의 경우 금감원이 직접 선정한 지정감사인인데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어폐가 있다"며 "거대 기업이 계획한 큰 그림을 회계법인이 일일이 다 파악하고 있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미필적 고의 형태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실제 이 같은 이유로 최근 법원은 증선위와 안진회계법인의 법정공방에서 안진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법원은 대우조선해양관련 증선위 처분 가운데 안진 측에 내려진 '12개월간 외부감사 업무정지'에 대해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냈다. 안진은 이미 업무정지 처분의 효력기한이 지난 4월로 끝났지만 이같은 처분을 받은 사실이 남아 있을 경우 추후 행정처분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대우조선해양 재무제표 감사를 맡은) 안진의 감사팀이 감사 소홀·부실 등 위반행위를 한 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더라도 증선위가 내린 처분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돼 재량권을 일탈·탐용한 위법이 있다"고 봤다. 또 "(안진의 감사과정에서 중대한 착오·누락이 있었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되지만) 이같은 사실만으로 원고가 소속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기준 위반 행위를 묵인·방조·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청년공인회계사회 측은 "기업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회계사들에게 협조를 요구할 것이고, 사회는 회계사들에게 기업이 어렵다며 침묵을 요구할 것이며 그에 동조하는 회계사들은 또 나올 수 밖에 없다"며 "정부는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