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35)씨는 5년 전인 2013년 오스트리아 빈에 자리를 잡았다. 외국인이지만 편리한 전자정부 서비스 덕분에 동사무소 같은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개인 신원이 확인된 이후 온라인으로 모든 행정 업무 처리가 가능했다. 이는 오스트리아 교통혁신기술부(BMVIT)와 통신감독기관 'RTR'이 2005년 공동으로 수립한 정보기술(IT) 정책 바탕의 ‘전자정부’ 덕이다. 전자정부는 정부가 IT 영역을 활용해 정책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말한다.

14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 시청 민원 담당실에서 일하는 있는 오스트리아 공무원의 모습.

◇ 800만의 오스트리아…작지만 강한 전자정부 리더로 평가받아

오스트리아는 인구 약 877만명의 작은 나라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전자정부 부문은 유럽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이 조사한 ‘전자정부 사용 및 활성화 조사’에서 2006년·200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점차 연구개발 비용 규모가 큰 다른 유럽 나라들에게 밀리고 있지만 유럽 지역의 전자정부 선제적 리더로 평가받는다.

오스트리아는 전자정부와 궤를 같이 하는 ‘그린 IT’도 지향하고 있다. IT 관련 기술 사용 중 발생하는 에너지 절감이 목표다. 예를 들어 출장 대신 화상 회의로 대체하고 전자정부 서비스를 활용해 종이를 쓰지 않는 식이다.

14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 시청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온라인 서비스의 질이 높을수록 에너지 절감 효과가 강하다"며 "동사무소 같은 곳에 사람들이 직접 올 필요가 없으니 기름도 들지 않고 종이도 필요없다. 민원인이 많지 않아 민원 담당실에도 공무원이 많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실제 오스트리아 전자정부 웹사이트를 들어가면 모든 행정 업무용 양식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외국인 대상으로 독일어 외에 영어·이탈리아어·슬로베니아어·체코어 같은 외국어도 제공한다.

정부의 연구개발(R&D) 부문 지출액도 높아 기업들이 정부를 믿고 따른다. 오스트리아 교통혁신기술부가 매년 발표하는 연례보고서 ‘R&D 및 기술보고서 2018’을 보면 2018년 R&D 부문 총 지출액은 2017년보다 5.6% 증가한 123억 유로(약 15조7000억원)다. 이는 오스트리아 국내총생산(GDP) 3.19%에 해당하는 규모로 EU 국가 중 스웨덴에 이어 2번째로 높다. 전 세계로는 7번째로 높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오스트리아 빈 무역관 측은 "특히 R&D 지출 중 기업 부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IT 부문에서 중동부 유럽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선호되고 있다"며 "그린 IT와 전자정부 서비스는 장기적으로 보면 공해 방지·에너지 절약·공무원 인력 감축 및 관련 설비 감소에 큰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전자정부 홈페이지의 외국인 관련 메뉴. 메뉴를 누르면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 1위 호령하던 우리나라 전자정부 수준…하락세 이어져

반면 전자정부 부문 세계 최고로 알려졌던 우리나라는 2014년 이후 하락세다. 국민이 인터넷을 통해 행정 업무를 처리해도 공무원이 종이로 뽑아 스캔해서 다시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다. 전자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규제들도 신 기술 개발의 발목을 잡는다. 사기업이 신 기술 개발을 못하니 전자정부에도 활용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가 2017년 12월 공개한 ‘디지털 선도국을 위한 전자정부 평가모델 개발’ 보고서를 보면 국제연합(UN)이 발표한 우리나라 전자정부 발전부문 종합 순위는 2010년 이후 3회 연속 1위였다. 하지만 인적자본 지수가 2014년 6위에서 2016년 18위로 하락하면서 2016년 전체 종합 순위가 3위로 떨어졌다. 7월 발표된 UN 전자정부 평가에서도 3위(1위 덴마크·2위 호주)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취학률·기대 교육연수 지수가 소폭 하락하고 상대 경쟁국의 지수 값이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다른 국가들이 성장할 동안 우리나라는 정체돼 있었다는 소리다.

국제연합(UN)이 공개한 2010년부터 2018년까지의 전자정부 발전부문 종합 순위.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정부가 전자정부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순위가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정책에 단순히 기술을 접목하는 게 아니라 미래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전자정부라고 설명했다. 또 규제를 완화하고 오스트리아처럼 R&D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한국정책학회장 "규제 완화하고 신 기술 도입해야 전자정부 수준 살아날 것"

명승환 한국정책학회장 겸 인하대 행정학 교수는 "전자정부 부문은 우리나라가 최고였지만 지금은 역전당했다"며 "빅데이터·클라우드 같은 융합기술을 접목시켜 단순히 활용하는 것을 넘어야 한다. 실시간 공유로 통제가 가능하고 예측이 가능해 에러와 시행착오가 적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가능하려면 신 기술들이 나와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신 기술 자체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오스트리아처럼 전자정부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고 R&D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행정안전부는 5일 ‘지능형정부 국민디자인단 회의’를 열었다. 학계 전문가와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관련 내용을 취합해 2019년 초까지 제대로 된 전자정부·지능형정부 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이세영 행정안전부 전자정부정책과장은 "블록체인 같은 기술을 활용해 전자서류를 서로 공유하고 관련 업무를 같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며 "예를 들어 예전에는 여권을 신청하려면 등본을 떼 와야 하고 남자의 경우 병역증명서도 필요했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는 병역이나 등본 내용이 부처간 공유가 되면서 여권 신청서와 본인 사진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전자정부 발전부문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2018년 온라인참여지수에서는 덴마크·핀란드와 함께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온라인 참여정책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와 R&D에 집중한다면 언제든 1위 자리를 되찾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명승환 교수는 "현재 다른 국가들에게 따라 잡히긴 했지만 정부가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기업 같은 민간 영역에 날개를 달아주고 규제를 완화시켜준다면 2~3년이면 다시 따라잡을 수 있다. 균형을 맞추면서 사기업과 함께 협력적 동반자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