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기념비적 작품 '전함 포템킨'의 나라 러시아
영화 도입 100여년 지난 지금 세계 최대 시장이 된 중국

세계 영화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매출액 측면에서 이미 가장 큰 시장이 되었다. 그런데 국민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를 따져보면 아직 성장의 잠재력이 한참 남아있기 때문에, 할리우드로서는 중국 영화 시장에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최근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중국 영화 시장을 노린 이러한 상업적 의도가 눈에 띈다.

우선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중국 배우가 많아졌다. 또한 속보이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중국 배우의 비중을 더 높인 중국 개봉용 편집본을 따로 만든 영화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을 배경으로 한 제작이 늘었다. 다음으로 중국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 즉 이야기의 구조상 중국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든지 중국인의 기여, 기술, 선의 등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든지 하는 전개가 많아졌다.

한편 중국이나 중국인이 적대국, 적군, 악역으로 등장하는 내용과 장면은 편집되거나 수정되고 있다. 반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오랜 기간동안 적대국, 적군, 악역으로 상징화되었던 소련과 러시아는 여전히 그대로여서 대조적이다.

19세기말 중국에 최초로 영화가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이것을 서양 ‘영희(影戱)’라고 했다. 영희는 중국의 그림자극이다. 당시 중국인들이 신문물 영화를 이해했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영화를 전영(電影) 또는 영편(影片)이라고 한다. 줄곧 ‘그림자 영(影)’자를 쓰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영화(映畫)를 표기할 때 ‘비출 영(映)’자를 쓰는 것과는 다르다.

20세기초 중국 초창기 영화를 선도했던 상하이 홍구(虹口) 극장(대희원) 자리 기념비.

20세기초 중국이나 러시아나 모두 초기의 영화는 당시 무대에 올려졌던 경극이나 예술공연을 필름에 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 소련 건국후 1919년 레닌이 모든 영화 제작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영화는 정치적 도구로 쓰이는 것이 첫번째 임무가 되었다.

러시아(소련) 영화중에서 선전(프로파간다) 영화의 대표이면서 동시에 세계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영화가 1925년 제작된 ‘전함 포템킨(Броненосец Потёмкин∙빠쬼킨)’이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은 그 유명한 오데사 계단의 민간인 학살 장면을 표현하면서 최초로 몽타쥬 기법을 도입했다. 이 영화는 1905년 흑해 북쪽의 항구 도시 오데사(Одесса)에서 전제 차르의 육군이 저지른 폭압적 행태를 표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프로파간다에 기여했다. 영화에서처럼 오데사항에 정박한 러시아의 대형 군함 포템킨호 수병들의 반란과 이에 호응한 시민들이 일으킨 봉기는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소련에 이어 1949년 ‘신중국’을 세운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당의 선전 목적에 부합하는 영화를 ‘주(主)선율(旋律∙멜로디)’ 영화라고 한다. 중국에서 주선율 영화가 주류로 대접받는 것은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 체제인 지금도 변함이 없다.

21세기의 대표적인 주선율 영화로는 2009년 개봉한 ‘건국대업(建国大业)’이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60주년 기념 헌정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1949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모택동, 주은래, 유소기 등의 공산당이 장개석, 장경국등의 국민당을 제압하고 ‘신중국’을 건국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1991년 영화 ‘대결전(大决战)’, 1989년 영화 ‘개국대전(开国大典)’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오데사(Одесса)는 1925년 제작된 소련영화 ‘전함 포템킨(Броненосец Потёмкин)’의 유명한 계단 장면이 1905년 실제 일어난 곳이다. 포템킨함 수병들의 반란과 이에 호응한 시민들의 봉기는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2010년 영화 ‘건당위업(建党伟业)’은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 헌정 영화라 하겠다. 청나라 왕조가 무너진 1911년 신해혁명으로부터 1921년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10년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우삼, 판빙빙, 한경, 유덕화, 양가휘 등 100명이 넘는 대륙과 홍콩의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주윤발은 원세개(위안스카이)역으로 등장한다. 당초부터 건당위업에 캐스팅되어 촬영까지 마쳤던 탕웨이의 출연장면은 개봉전 삭제되었다. 색계등 선정적 영화에 출연했던 전력이 있는 배우가 ‘주선율’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당국이 문제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또는 어느 나라든 연예인이 정치에 이용되거나 또는 연예인 스스로 정계에 발을 딛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중국의 경우는 잘못 되면 연예인 본인이 큰 내상을 입게 된다. 잘나가던 판빙빙은 탈세 그리고 미확인된 정가의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겨우 풀려났으나 그녀의 미래를 판단하기는 어려워졌다. 판빙빙이 출연한 영화는 개봉이 금지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의 주요 정치기구인 정협(政协)이나 인대(人大)의 전현직 위원이었던 영화계 인사로는 성룡, 주성치, 공리, 천다오밍, 장예모, 펑샤오강 등이 있다.

중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상을 받은 것은 193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 참여했던 ‘어광곡(渔光曲)’이 최초이다. 중국 어촌의 어부와 선주 집안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홍고량(红高粱)’이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중국영화는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알려졌다. 홍고량은 일본 침략 시기 고량주 주가의 흥망과 일제의 압제를 그린 영화로 원작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莫言)’의 소설이다. 공리 주연, 장예모 감독이다.

장예모(张艺谋) 감독은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주선율’ 영화 뿐만 아니라 ‘영웅’, ‘금릉의 13 소녀’등 상업적으로도 성공작을 많이 남겼다. 그는 영화 말고도 2008년 북경 하계올림픽 개막식 총감독을 맡았고, 그가 주도한 야외 공연 프로젝트 ‘인상(印象)’ 시리즈는 항주의 유명한 ‘인상 서호(西湖)’ 외에도 리쟝(丽江), 해남도등 7곳에 있다. 인상 시리즈는 해당 지역을 상징하는 곳의 야외에서 공연이 이뤄지는데 예를 들어서 인상서호는 항주의 서호 실제 호수 위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홍고량(红高粱)’. 장예모 감독, 공리 주연이다.

위에서 중국과 러시아, 러시아와 중국의 문화, 그 중에서도 영화를 매개로 한 양국의 이야기거리를 풀어 보았다. 역시 중국과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고, 사회주의를 같이한 역사 등을 공유하는 특수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관심과 교류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시장경제를 운위하는 러시아, 중국과 교역하며 상호 이익을 추구해 오고 있다. 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지역적으로도 붙어 있고 소비자의 규모도 큰 두 나라와의 경제적 거래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현대의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교역이라는 두가지 테마만으로도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러시아 시장을 포함한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힐 동인이 된다. 더구나 동북아의 정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될수록 육로로 연결된 경제권은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광의의 중국어권 시장과 러시아어권 시장도 함께 묶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 GM, CJ 국내마케팅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 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마케팅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