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갈등]⑲

오는 2025년까지 단계적인 원전(원자력발전소) 폐쇄를 추진중인 벨기에가 올 겨울 전력난·블랙아웃(대정전)을 걱정하고 있다. 국가 전력의 40%를 담당하는 원전 7기 중 6기가 가동을 중단, 전력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벨기에는 프랑스, 독일 등 이웃나라에서 전기 수입을 추진중이나 유럽에 한파가 닥치면,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벨기에 전력당국은 올 12월에 원전 2기 재가동을 추진중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고속도로 가로등을 끄고 국가 전역의 가정 내 순환정전(하루 3시간) 실시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탈원전'을 선언한 벨기에가 원전 가동 문제로 전력난을 겪고 있다. 사진은 현재 가동을 멈춘 벨기에 티한지 원전.

◇ 전력 700~900MW 부족…원전 운영사, 기업 절전 독려 광고

12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벨기에는 도엘 원전 1·2호기가 올해 봄 냉각시스템 문제로 정비에 들어갔고, 티한지 1호기는 연료 재장전과 정비를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 티한지 2·3호기와 도엘 4호기는 원자로 주변 콘크리트 부식 문제로 가동을 중단했다. 현재 운영중인 원전은 도엘 3호기뿐이다.

현재 멈춰있는 원전 6기는 1975~1985년 사이에 40년의 수명으로 건설됐는데, 설비용량이 3분의 2수준인 6기가와트(GW)까지 줄었다. 벨기에 전력당국은 올 겨울에 1700메가와트(M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한데, 아직 700~900MW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원전 운영사인 엔지 일렉트라벨은 기업들의 절전을 독려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엔지 일렉트라벨은 도엘 1호기와 2호기를 각각 올 12월 10일과 12월 31일부터 재가동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벨기에 에너지 장관인 마리-크리스틴 마르겜은 재가동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벨기에 철도운영사인 인프라벨은 전력이 부족해지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는 물자 운송을 중지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전기요금 6배 이상 폭등…프랑스·네덜란드서 비싸게 수입한 영향

가디언은 "(올 겨울) 벨기에의 운명은 이웃나라의 날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 역시 노후 원전의 안전 문제로 겨울철 전력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며 한파가 불어닥치면 벨기에에 잉여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 독일의 경우 벨기에로 전력을 가져오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고 한다.

벨기에의 또 다른 고민은 전력난으로 비싼 전기를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부터 수입한 탓에 올 9월 전기요금이 메가와트시(MWh)당 411유로까지 폭등했다는 점이다. 원전이 정상 가동됐던 지난해 평균 전기요금(MWh당 60.19유로)의 6배가 넘는 수준이다. 벨기에 국민들은 '왜 해외에서 비싼 전기를 사와야 하냐'면서 전력당국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S&P 글로벌의 피에르 조르쥬 애널리스트는 "벨기에가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가스발전소 6~8기가 필요하다"면서 "문제는 아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 여건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 가스발전소를 지을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는 "유럽은 국가간 전력망이 연결돼 벨기에처럼 전기가 부족하면 수입해 쓸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기가 부족해도 가져올 곳이 없다"면서 "인류 역사상 에너지 수요가 줄어든건 석유파동때 뿐이다. 정부가 탈원전 기조에 맞춰 전력수요를 낮게 잡고 전력공급을 계속 줄이면 훗날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