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회장이 '글로벌 LG'에 혁신 DNA를 이식하기 위한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LG화학은 9일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에 글로벌 기업인 미국 3M 신학철(61·사진) 수석부회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1947년 LG화학 창립 후 외부인사를 CEO(최고경영자)에 영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말부터 LG화학 대표를 맡아 온 박진수(66)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후진 양성 역할을 맡는다.

구 회장은 '차기 3M 회장 후보'였던 신 부회장을 'LG맨'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은 신 부회장이 LG화학과 사업 유사성이 있으면서도 '글로벌 혁신 기업의 대명사'인 3M의 리더였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올해 40세인 구 회장이 세대교체를 시작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글로벌 LG'에 혁신 DNA 이식

신 부회장 영입은 LG가 보수적 색채를 벗고 혁신과 개방으로 전환하는 신호로 여겨지고 있다.

신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2인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충북 괴산 출생으로, 청주고·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후 풍산금속에 근무하다 1984년 한국 3M에 대리로 입사한 뒤 산업제품팀장·소비자사업본부장을 지냈다. 1995년 필리핀 3M 지사장으로 부임, 기울어가던 필리핀 법인을 회생시켰고 그 공을 인정받아 1998년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3M 본사에 발탁됐다. 이후 본사 전자소재사업부 부사장, 산업용 비즈니스 총괄 수석부사장,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을 맡았다.

3M은 회사명('미네소타 광업 및 제조·Minnesota Mining & Manufacturing)'에서 알 수 있듯 1902년 창업 당시엔 광산업체였지만, 이후 연구개발에 주력해 글로벌 혁신 제품을 쏟아냈다. 1930년대에 만든 '스카치테이프'는 접착테이프의 보통명사가 됐고, '포스트잇'은 AP통신 선정 '20세기 세계 10대 히트 상품'이다. 현재도 5년 내 개발된 신제품으로 매출의 40%를 달성한다는 '40% 룰', 연구·개발 부서 직원 전체가 자신들의 업무와 관계없는 프로젝트에 업무 시간의 15%를 할애한다는 '15% 룰' 등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매출은 316억달러(약 35조6000억원)로, LG화학(25조7000억원)의 1.4배다.

신 부회장은 '근면과 현장 중심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는 2014년 본지 인터뷰에서 "(글로벌 기업 2인자에 오른 비결은) 한국적 근면성과 실행력"이라며 "경영자가 자기 기업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면 현장을 많이 돌아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는 LG화학이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정보전자 소재, 생명과학 등의 사업 영역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회장, 첫 인사부터 변화에 방점

지난 6월 취임한 구광모 LG회장이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할 거란 예상을 뒤집고,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한 충격 요법 인사를 펼치고 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LG 고위 관계자는 "LG화학은 그룹 내에서도 실적이 좋은 회사여서 CEO를 교체할 요인은 크게 없었다"며 "글로벌 M&A(인수합병)와 혁신 역량 강화에 방점이 찍힌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올 3분기에 매출액 7조2349억원, 영업이익 6024억원 등 매출액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내달 초로 예정된 그룹 인사에서도 '파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LG그룹 내 전문경영인 부회장은 물러나는 박 부회장과 차석용(65), 한상범(63), 조성진(62), 하현회(62), 권영수(61) 등 6명이다. 다만 일부에선 "구 회장이 다른 계열사에서는 안정적인 기조하에서 실적에 맞는 인사를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번 인사로 '42년 LG맨' 박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박 부회장은 1977년 당시 럭키로 입사, 2012년 말 LG화학 CEO에 오른 뒤 회사를 글로벌 '톱10' 화학기업으로 발전시켰던 한국 화학업계의 대표적 인물이다. 박 부회장은 "40년 이상 근무하며 LG화학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하고 명예롭게 은퇴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