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구스 제공

직장인 전모(34)씨는 겨울에 입을 패딩을 알아보던 중 버려진 패딩을 재활용해 새 패딩을 만드는 업체에 후원을 하기로 했다. 전씨가 크라우드펀딩으로 후원한 '베리구스'는 유행이 지나 소비자가 더 이상 입지 않는 패딩을 기부 받거나 버려진 패딩의 거위털을 모아서 새 패딩을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다.

전씨는 "패딩 한벌을 만드는데 희생되는 거위나 오리가 20마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번 겨울에는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만든 새 패딩에 돈 낭비하지 않고 한번 사용했던 거위털을 재활용한 패딩을 사 입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환경과 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착한 소비'가 20~30대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패딩 같은 의류는 물론 화장품, 생활용품 등도 윤리적인 제조·개발 과정을 거쳤는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등이 중요해졌다. 국내 기업들은 이런 흐름에 맞춰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제품이나 동물성 원료를 넣지 않은 비건(vegan) 제품, 폐자원을 활용한 재활용 제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동물 원료 없는' 비건 화장품 시장 2025년이면 24조원으로 성장

코스맥스 제공

국내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는 지난달 아시아 최초로 프랑스 인증기관 EVE로부터 비건 생산설비 인증을 획득했다. 비건은 채소와 과일만 섭취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원래 식습관을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최근 환경과 동물보호,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동물성 원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모든 제품을 뜻하게 됐다.

코스맥스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 비건, 할랄 등 친환경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졌다"면서 비건 화장품 생산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이 연평균 6.3% 성장해 2025년에는 208억달러(약 23조2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랜드뷰리서치는 "환경 문제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는 동물성 성분을 함유하지 않은 화장품을 선호한다"면서 "앞으로 식물과 미네랄 기반 성분으로 만들어진 화장품의 인기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워글래스 홈페이지

실제 국내 헬스&뷰티(H&B) 스토어 올리브영의 올해 1~9월 매출을 분석한 결과, 비건 제품을 보유한 브랜드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70% 늘었다. 국내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최근 화학 물질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커지면서 천연·식물성 원료 등을 넣은 화장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미국 대표 비건 색조 화장품 '아워글래스'의 국내 판권을 획득하고 올해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아워글래스 매장에서 만난 김모(29)씨는 "얼마 전 먹는 음식부터 옷, 샴푸, 화장품까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국내 화장품 기업 중에는 아모레퍼시픽(090430)이 이런 흐름에 합류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의 '워터뱅크 에센스' 미국 인증 기관인 비건 액션(Vegan Action)으로부터 유기농 인증을 지난 3월 획득했다. 동물 유래 성분을 포함하지 않고, 제조 과정에서 동물 실험이 이뤄지지 않은 식물성 화장품에 부여하는 인증이다.

◇인조모피·인공충전재 넣은 패딩 인기

LF 제공

패션에도 동물권과 윤리적인 제조를 중시하는 '입는 채식주의'가 확산되는 추세다.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채취되는 모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구찌, 베르사체, 아르마니 등 명품 기업은 최근 모피 제품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국내 의류업체들도 천연 모피 대신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 인조 모피로 알려진 에코퍼(eco fur)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LF(093050)의 여성복 브랜드 '앳코너'는 에코퍼를 활용한 무스탕을 내놓았고, 롯데백화점은 에코퍼로 만든 '롱무스탕'을 지난달 출시했다.

윤리적인 방법으로 동물의 털을 채취한 제품에 부여하는 '윤리적 다운 제품 인증(RDS)'을 받은 기업도 늘었다. 블랙야크의 경우 올해 다운 패딩 전 제품에 RDS 인증을 받았다. 네파, 코오롱스포츠 등 아웃도어 브랜드도 최근 RDS 인증을 받은 구스를 넣은 패딩을 주력 제품으로 선보였다.

다운을 대체할 인공 충전재를 사용한 제품도 등장했다. 노스페이스는 자체 개발한 인공 충전재 '티볼'을 넣은 패딩을 올해 선보였다. 이런 인공 충전재는 기존 다운 패딩과 비교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GS샵 관계자는 "거위나 오리 등 동물의 털을 아예 쓰지 않는 이른바 '비건 롱패딩'의 판매도 크게 늘고 있다"면서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며 소비자들의 동물윤리 의식이 높아지고, 섬유 기술의 발달로 인조 충전재도 계속 좋아지고 있어 착한 패딩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