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실적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최근 노조와의 대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올해 임금협상을 모처럼 휴가철 이전인 7월에 마무리한 현대자동차는 최근 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싸고 노조가 총파업까지 불사하며 강경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GM 역시 최근 법인 분리 결정에 대해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르노삼성의 경우 올해 임금협상을 끝내지 못한 채 진통을 겪고 있다. 게다가 르노삼성은 과거 금속노조 가입을 주도했던 강경파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향후 노사간 대립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현대차 노조 "광주형 일자리 추진하면 총파업" 재차 강조

현대차 노조가 지난달 31일 울산공장 본관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6일 울산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추진 중인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해 총력투쟁으로 저지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란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기업과 지자체, 시민이 합의해 임금을 자동차 업계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공장에 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 사업이 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하향 평준화해 고용불안을 초래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금속노조 역시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해 반대입장을 보이며 필요할 경우 총파업까지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지난 6월 사측이 광주광역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을 때부터 노조는 이 사업이 실패하는 투자가 될 것이고 노사간 단체협약도 위반되는 사항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 결정에서 노조의 입장은 철저히 배제돼 왔다"며 "이 사업으로 인해 현대차는 물론 울산광역시마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노조는 금속노조와 연대해 끝까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곤란을 겪는 쪽은 현대차다. 광주광역시는 최근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역 노동계와 합의를 마쳤다며 현대차에 약속대로 투자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그러나 광주시가 협상 파트너로 삼고 있는 지역 노동계 대표는 한국노총 인사로 정작 현대차 노조나 민주노총을 움직이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광주에 세우기로 한 자동차 공장은 마진이 적은 경차급 SUV를 생산할 예정으로 정작 현대차의 실적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며 "무리한 사업 참여로 노조의 파업이 현실화 될 경우 현대차가 생산 차질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르노삼성은 강경파 집행부 출범…한국GM 노조도 "법인 분리 반대" 압박

노조와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 곳은 현대차 뿐이 아니다. 한국GM 노조는 지난달 연구개발(R&D) 법인 분리 결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연일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달 이사회와 주총을 잇따라 열고 본사 디자인센터와 기술연구소 등을 통합해 별도의 R&D 법인을 만들어 분리하는 안건을 확정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법인 분리가 한국에서의 생산라인을 정리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월 임단협 잠정합의 후 손을 맞잡은 한국GM과 정치권, 협력사 대표. 왼쪽부터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배리 엥글 GM 글로벌 사업부문 사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승 한국GM 비대위 대표

한국GM 노조는 당초 회사의 R&D 법인 분리를 저지하기 위해 파업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조정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단체교섭을 통해 의견 차를 좁히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일단 파업은 무산된 상태다. 한국GM 노조는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책임지고 회사의 R&D 법인 분리 결정을 막아내라며 강경투쟁 기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매년 순조롭게 임금협상을 끝냈던 르노삼성도 올해는 노사가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조는 올해 기본급 10만667원, 자기계발비 20%(2만133원) 인상과 함께 조합원 특별격려금 300만원, 노사신뢰 생산·판매 격려금 250%, 문화생활비 및 중식대 보조금액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판매 부진과 실적 악화 등을 이유로 노조의 제안을 거부하며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르노삼성은 강경파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노사간 긴장감이 더욱 커졌다. 지난 5일 치러진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51.5%의 득표율로 당선된 박종규 조합원은 지난 2011년 르노삼성의 금속노조 가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신임 노조위원장이 금속노조 가입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르노삼성 관계자는 "금속노조 재가입은 위원장 독단으로 결정할 사항도 아니고 현재 노조원들은 기업노조를 더 선호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에서는 르노삼성 노조가 새 위원장으로 강경파 인물을 선택한데 대해 그동안 누적된 임금협상에서의 불만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르노삼성은 현재 본사로부터 위탁해 만들고 있는 닛산 로그의 생산계약이 내년 9월에 만료된다. 만약 올해 임금협상이 연말까지 마무리되지 못하거나, 강경 집행부 출범 이후 노사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추가 위탁계약 체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