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현대타운'은 지은 지 30년이 넘은 빌라다. 불편한 점이 많지만, 재건축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28가구에 불과해 사업성이 안 좋을뿐더러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주도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선택은 '가로주택 정비사업'이었다. 이웃 다가구주택 주인과 합의해 지난 7월 조합을 만들었고, 지난달 시공사 선정을 마쳐 내년 상반기 착공한다. 두 건물 거주자들은 후년 말에는 조그만 새 아파트에 입주한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통해 올해 재건축을 마치고 준공한 서울 강동구 다성이즈빌. 최근 재건축·재개발이 어려운 소규모 저층(低層) 주거지를 대상으로 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 늘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이 어려운 소규모 저층(低層) 주거지를 대상으로 하는 가로주택 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이란 붙어 있는 주택 두 채 이상을 헐고 그 자리에 새 아파트를 짓는 정비 사업이다. 길과 길이 만나는 모퉁이 위치여야 허가를 얻을 수 있다. 2012년부터 허용됐고, 올해 2월 정부가 인센티브를 늘리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행정 절차가 훨씬 간단하고, 초과이익 환수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사업성 검토비 1000만원을 시(市)가 지원하고, 공사비 최고 40%까지 2% 금리로 대출해준다. 9·13 대책에서는 연면적 또는 가구 수의 20% 이상을 공적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경우 용적률을 법적 상한까지 제공하는 방안까지 포함됐다.

2년 사이 7배 급증… 땅값 비싼 서울이 63%

도입 사례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은 사업장은 2015년 전국 4곳에서 지난해 27곳으로 늘었다. 이 41곳의 사업이 완료되면 새집 3202가구가 공급된다.

시도별 가로주택 정비사업는 서울이 26곳(63%)으로 가장 많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비싸, 사업 규모가 작아도 건축비를 충당할 만한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입주한 가로주택 정비사업 역시 지난해 11월 준공한 서울 강동구 '다성이즈빌'이었다. 인센티브가 확대된 데다 성공 모델까지 나와 사업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제로 에너지 인센티브·LH 협업 등으로 사업성 극대화

현대타운은 신축되는 48가구 중 35%인 17가구를 일반 분양할 수 있다. 당초 용적률 제한 때문에 11가구만 가능했지만, '제로 에너지 주택' 인센티브를 통해 6가구를 더 지어서 팔 수 있게 됐다.

제로 에너지 주택이란 태양광발전 설비와 고성능 단열 자재 등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주택이다. 정부는 에너지 절감형 주택을 지으면 용적률과 높이 기준을 최고 15%까지 완화해준다. 조합 관계자는 "현대타운은 대치동 학원가를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 주변에서 분양가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일반 분양이 늘어나면 주민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했다.

제로 에너지 주택은 시공사인 에스엘건설개발의 모기업인 디벨로퍼 '스톤빌리지'가 먼저 제안했다. 김선곤 스톤빌리지 대표는 "재건축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다세대주택 소유자들 사이에서 제로 에너지 주택을 활용한 재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인천숭의1구역 조합은 LH를 공동 사업자로 끌어들여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LH 참여형 사업을 활용하면 사업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으며 일반 가로주택 정비사업보다 저리로 대출할 수 있는 한도도 늘어난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가로주택 정비사업 등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추가 인센티브 방안까지 활용한다면 사업성 없는 노후 빌라나 단독주택도 충분히 정비가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