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정보 기술) 하드웨어 산업의 양대(兩大) 축인 스마트폰과 반도체 산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1일(현지 시각)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와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인 IC인사이츠가 각 시장이 동시에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하드웨어 완제품과 부품을 대표하는 두 시장이 동시에 꺾이는 것은 IT 산업 전체가 위축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애플·아마존 등 세계 주요 IT 기업들은 시장 예상치를 하회하는 4분기 실적 전망을내놨다.
◇스마트폰 시장 위축세 가속, 반도체 시장도 성장세 꺾여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SA는 1일 올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3억6000만대로 1년 전보다 8.4%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 분기(―2.8%)보다 하락 폭이 3배 이상 가파르다. SA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네 분기 연속 위축되는 것은 불황기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시장이 빠르게 식어가는 것은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성장세가 꺾였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은 작년 3분기부터 시장이 줄어드는 상태이고, 올 상반기까지 매 분기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해왔던 인도 스마트폰 시장 역시 3분기에는 성장률이 5%로 꺾였다. 미국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 전쟁으로 신흥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자 스마트폰 판매가 크게 위축된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혁신이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는 것도 주요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체는 삼성전자다. SA는 올 3분기 삼성전자가 작년보다 13%가량 줄어든 7230만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시장점유율(20.1%)은 간신히 20%대를 지켰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의 화웨이(32%)와 샤오미(19.1%)의 판매량은 큰 폭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되면서 핵심 부품인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도 꺾이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는 2017년 이후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던 세계 반도체 시장이 올 3분기에는 14%, 4분기에는 6% 성장에 그쳐 성장률이 반토막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은 이미 시작됐다.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는 지난달 D램 고정 거래 가격(대형 거래처 간 기준 가격)이 9월보다 10.74%나 급락했다고 밝혔다. IT 기기의 저장 장치로 쓰이는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 7월부터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 수출 경쟁력도 타격 우려
스마트폰과 반도체 시장의 동반 하락은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악재다. 실제로 올해 10월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1072억달러(약 120조1200억원)로 한국 전체 수출액의 21.2%를 차지한다. 스마트폰도 연간 총매출이 무려 100조원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두 시장이 동시에 위축될 경우 수출과 투자·고용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스마트폰이 더 암울하다. 한국 스마트폰은 최근 중국의 거센 도전 속에서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시장점유율이 1% 남짓에 불과하고, 인도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중국 샤오미에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준 상태다. 만약 미국 당국이 중국 스마트폰의 북미 시장 진출을 허용하면 메가톤급 악재가 될 수 있다.
반도체는 스마트폰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미국 마이크론의 3강 체제가 확고한 데다 자율주행차·빅데이터 등 미래 산업의 등장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최근 투자자들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하며 "내년 1분기까지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2분기 이후에는 수요가 늘어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계획대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그동안 기술 발전에 따라 IT 산업이 급성장해 왔지만, 최근 들어 혁신 속도가 줄면서 하강 국면에 접어든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제공해야 다시 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