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병원 병상 수는 이미 과잉이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6년간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의료자원의 공급 구조와 의료 이용·건강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진단이 나왔다. 높은 입원율과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국내 병원들의 구조조정과 기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요지다.

연구책임자인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의료생활권을 도출하고 각 지역 간 의료이용 양상을 비교 분석한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KNHI_Atlas) 구축 연구' 중간 결과를 30일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에서 발표했다.

김윤 교수 연구팀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구 수, 지역 내 의료기관 이용률(자체충족률), 의료기관까지의 이동시간을 산출해 의료생활권을 구분하고 이에 따른 의료자원과 의료이용, 건강결과를 분석했다.

조선DB

◇ 소규모 병원 병상 과잉…지방이 서울보다 급성기 병상 많아

우리나라는 300병상 미만의 소규모 병원들의 병상이 과잉 공급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기준 현재 우리나라 급성기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6.2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3개의 1.9배에 이른다.

특히 OECD 회원국의 경우 300병상 이상 규모의 대형병원(종합병원급) 병상이 전체 병상 비율의 50% 이상인 반면, 우리나라는 300병상 미만 중소형 병원 병상이 전체의 69%로, 중소형 병원 중심의 공급구조를 갖고 있다.

연구팀이 56개 진료권(지역)으로 구분해 각 지역의 인구 1000명당 급성기 입원 병상 수를 따져보니 예상과 달리 서울이 아닌 지방의 병상 수가 훨씬 많았다.

급성기 병상이란 요양병원, 정신병원, 재활병원, 한방병원 등 특수 병상을 제외한 일반 병·의원 병상을 칭한다.

56개 지역 중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주(9.9)였다. 이어 여수, 광주, 목포, 원주, 양산, 순천, 부산, 김해, 고성, 문경, 영월, 창원, 익산, 군산, 충주, 진주, 안동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과 수도권은 오히려 중하위권에 속했다. 56개 진료권 모두 병상 수가 OECD 평균(3.3)을 훨씬 상회했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 특수, 요양, 정신, 한방, 치과 병상 등을 제외한 급성기 입원진료병상을 대상으로 함.

◇ 지도 그려보니…강릉·평창 'GOOD' 이천·여주 'BAD'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은 △고성 △영월 △진천 △거제 △사천 △김천 △서산 △당진 △속초 △시흥 △이천 등 11곳이다. 지역 거점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은 △여수 △문경 △홍성 △동해 △고성 △영월 △진천 △거제 △사천 △김천 △서산 △당진 △속초 △시흥 △이천 등 총 14곳이다.

쉽게 말해 이들 지역의 경우 OECD 평균 이상의 병상을 공급하고 있으나, 중증질환에 대해 난이도가 높은 의료를 책임질만한 큰 병원은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지역별 의료자원 격차는 사망률 차이로 이어졌다. 강릉‧평창과 이천‧여주의 사망비는 2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56개 진료권별 의료결과를 살펴보면, '중증도 보정 사망비'가 가장 높은 곳은 이천‧여주(1.7)로 나타났다. 중증도 보정 사망비가 가장 낮은 곳은 강릉‧평창(0.8)이었다.

이천, 속초, 당진, 서산, 고성, 거제, 홍성, 사천, 영월, 동해 등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및 지역거점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의 사망비가 우리나라 평균 사망비보다 더 컸다.

반대로 사망비가 가장 낮은 강릉‧평창의 경우, 주변 지역 중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없는 속초(1.5), 영월(1.3)보다 낮았다.

강릉·평창의 경우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은 6.6개로 전국 평균(6.2개)보다 소폭 많았으며, 급성기 병상의 63%가 300병상 종합병원에 의해 공급되고, 700병상급의 지역 거점 의료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비가 가장 높은 이천‧여주는 인구 1000명당 병상수가 3.7개로 전국에서 가장 적은 수준이었으며 급성기 병상 100%가 300병상 미만 의료기관에 의해 공급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자체충족률도 45.4%(평균 64%)로 의료자원이 취약했다.

대형 종합병원·지역거점 의료기관의 유무와 중소병원 분포에 따른 의료 결과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대전, 서울, 전북, 광주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초과 사망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증도보정 사망비 (권내 이용 기준).

'중증도 보정 사망비'란 병원별 실제 사망자 수에 환자 중증도를 고려한 예측사망비를 나눈 것으로, 각 병원별 사망한 환자들의 중증도를 모두 같은 수준이 되도록 통계적인 보정 작업을 거쳐 나온 값이다. 연구팀은 140개 주진단군별 성별, 연령, 보험료분위, 입원경로, 수술여부, 동반질환 등을 독립변수로 두고 통계화했다.

56개 진료권 중 재입원비가 가장 높은 지역은 여수(1.4), 가장 낮은 곳은 천안‧아산(0.8)으로 1.8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재입원비율이 가장 낮은 천안‧아산의 경우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은 5.7개(전국평균 6.2개)이며, 급성기 병상의 40%가 300병상 종합병원에 의해 공급됐으며, 지역거점 의료기관 기능을 하는 종합병원이 있었다. 인구 1000명당 입원 또한 204건으로 전국 평균에 비해 낮았으며, 자체충족률은 81.1%였다.

반면 재입원비율이 가장 높은 여수는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9.6개)이며, 급성기 병상의 13%가 300병상 종합병원에 의해 공급됐으나, 지역거점 의료기관 기능을 수행하는 병원은 없었다. 인구 천명당 입원 또한, 334건으로 전국 평균 225건에 비해 높았으며, 자체충족률은 72.8%였다.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1병상이 늘어날때마다 입원도 1000명당 19건씩 증가하고 재입원도 7% 늘었다. 불필요한 입원을 의미하는 예방가능한 입원도 인구 1000명당 30건 증가했다. 반면 병상 수가 늘어나도 사망률 감소 효과는 미비했다.

연구를 수행한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시도 및 진료권별 병상총량제, △급성기 종합병원 신설 병상 기준 강화, △지역거점 병원 육성, △적정 규모 이하의 중소병원 기능 전환 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병상 수가 충분하거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소규모 병원만 올망졸망 있어 중환자를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나라 의료이용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300병상 이하 의료기관은 문을 닫으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면서 "병상 공급량이 많아도 공급구조가 좋은 경우 의료 이용과 의료 결과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불필요한 입원 및 재입원을 예방하고, 입원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능을 전환하고 전체 병상 공급구조를 살필 필요가 있다"며 "병상의 절대적 총량을 늘리기 보다는 의료의 질과 효율성 측면에서 중소병원의 진료기능을 명확히하고 의료기관 간의 협력체계를 갖고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운영실은 오는 12월말, 지난 4년간의 의료이용지도 연구가 완료되면, 이를 기반으로 최근 자료를 업데이트 하는 등 지표를 고도화해 의료이용지도(KNHI-Atlas) 시각화 시스템을 내년 초 공개할 예정이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의료이용지도 연구는 지역에 따라 입원환자 사망률이 왜 2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지, 선진국이 오래전부터 병원과 병상을 줄여온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는 계속 늘어나는 것에 대한 결과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시작됐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국민에게 올바른 의료정보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료자원 공급의 적정화와 한국형 의료전달체계 구축의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