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전라북도 군산시 소룡동 군산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국내 1위 특수강 업체 세아베스틸제강공장 안은 쇳덩어리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특수강은 자동차, 선박, 산업기계의 핵심 부품 소재다. 특히 엔진, 트랜스미션, 스프링 등 자동차 중요 부품을 만드는 소재로 활용된다.
세아베스틸은 철스크랩(고철)을 녹여 만든 쇳물로 특수강을 만든다. 마침 100t 규모 전기로(電氣爐) 1대가 굉음을 내며 고철을 녹이고 있었다. '웅웅'거리던 전기로는 '지지직, 탁'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번쩍하는 빛을 냈다. 전기와 화학 에너지로 고체 상태인 철을 액체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전기로에서 만들어진 쇳물은 정련로(LHF)와 진공탈가스장치를 거치며 불순물을 걸러냈고, 연속주조기를 지나면서 서서히 굳어 덩어리 형태의 반제품으로 탄생했다.
반제품인 블룸과 빌렛은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압연설비를 지나며 길쭉하게 늘어났다. 블룸은 중대형 봉강, 빌렛은 소형봉강을 만드는 소재를 말한다. 세아베스틸은 반제품 상태인 블룸과 빌렛을 팔기도 하지만, 압연을 통해 고객사가 원하는 규격의 특수강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특수강은 일정 크기로 절단돼 자동으로 분류됐다.
쇳물을 만드는 제강단계부터 연주, 압연, 품질검사까지 모든 공정이 이뤄지는 제강공장 내부는 열기와 소음으로 가득했다. 공장 천장에 달려 있는 크레인이 움직이면서 내는 둔탁한 엔진소리와 철강재가 설비에 부대끼면서 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산업 현장 최전선임을 알렸다. 고요한 공장 밖과는 다른 세계였다.
최근 군산산업단지는 현대중공업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한데 이어 한국GM마저 공장을 폐쇄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군산 경제 대부분을 차지하던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떠나면서 공단 내 활기도 사라졌다. 세아베스틸 등 대기업 몇 곳만 남아 군산산업단지를 지키고 있다.
그나마 군산에 남아 있는 세아베스틸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자동차·조선 등 주요 수요산업이 침체에 빠지고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와중에 강력한 경쟁사마저 등장해 3중고를 겪고 있다. 세아베스틸은 살 길 찾기에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 1955년 설립돼 기아특수강 거쳐 세아베스틸로…글로벌 자동차사에 특수강 공급
세아베스틸은 1955년 설립된 대한중기공업이 모태다. 대한중기공업은 1990년 기아특수강으로 사명을 바꿨고, 1997년 군산에 특수강공장을 종합 준공했다. 2003년 세아그룹이 기아특수강을 인수하면서 세아베스틸로 다시 사명을 바꿨다. 강관을 생산하는 세아제강과 함께 그룹의 한 축을 맡고 있다. 현재 군산과 창녕에 공장을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 1조9275억원에 영업이익 1259억원을 기록했다.
세아베스틸은 국내 1위 특수강 업체로 작년 시장 점유율 46.8%를 차지했다. 매출의 95%가 특수강에서 나온다. 나머지 매출은 대형 단조와 자동차 부품에서 발생한다. 자동차, 산업기계, 베어링, 건설‧중장비, 조선 등 다양한 산업에 특수강을 공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토요타, 닛산, 혼다, GM 등 자동차사와 스미토모, 보쉬, 풍산, 지멘스, GE 등 산업기계 업체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하지만 세아베스틸은 최근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전방 수요 산업 대부분이 부진에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 강력한 경쟁자마저 등장했다. 세아베스틸 가장 큰 고객사인 현대‧기아차 계열사 현대제철(004020)은 특수강 시장에 새로 진출해 올해 하반기부터 공장을 본격 가동한다.
권정태 세아베스틸 부장은 "특수강 1위 기업으로써 수요 산업 발전과 시장 성장 견인을 위해 노력했지만, 경쟁 가속화에 산업 전반의 침체와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위기를 맞이했다"며 "올해 하반기에도 원재료 가격 상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수요 산업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어 내년도 영업이익 증가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 글로벌 판매 확대‧6대 특화 기술 개발 추진
세아베스틸은 전반적인 수요산업 침체, 경쟁사 등장, 보호무역주의 등 위기 극복 방안으로 '글로벌 판매 확대'와 '6대 특화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특히 2020년까지 수출 판매량 50만t 달성을 목표로 삼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2016년 세아베스틸 북미 판매법인 '세아 글로벌'을 설립했고, 태국‧독일에도 판매 사무소를 두고 현지 밀착형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작년 독일, 인도, 멕시코 등에도 신규 거점을 만들었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업체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일본 혼다의 동남아 공장에 특수강 납품을 시작하는 등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폴크스바겐, 다임러 등 독일 자동차업체에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업체를 통해 소재를 납품하고 있다. 올해 글로벌 자동차사 판매 물량은 25만t으로 추산된다.
세아베스틸은 올해 글로벌 시장 판매 목표치였던 41만t을 초과해 45만~46만t 수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왕성도 세아베스틸 기술연구소 상무는 "국내 시장 한계를 보고 5~6년 전부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추진했기 때문에 2020년 50만t 목표 달성은 문제없다"며 "올해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유럽 세이프가드 등 보호무역주의 이슈가 없었다면 수출 물량은 더 크게 늘었을 것"이라고 했다.
세아베스틸은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6대 특화제품을 개발해 연내 양산을 앞두고 있다. 고청정 베어링강, 열처리 저변형강, 내마모강, 고충격인성강, 저이방성강, 무결함 봉강 등 6대 특수강으로 고객사 요구에 적극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왕 상무는 "특수강 시장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양산이 시작되더라도 단기간에 판매량이 증가하지 않지만, 내년 하반기쯤엔 제품별로 필요 물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고객사와 접촉할 때도 6대 특화제품으로 기술경쟁력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