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만병은 림프절을 증식시켜 온몸에서 국소적으로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희귀 질환이다. 전신에 부종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종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워낙 희귀한 병이라 치료법은 물론 치료 가이드라인이나 진단 가이드라인도 없다.

미국 풋볼 선수였던 데이빗 파겐바움씨는 2012년에 캐슬만병에 걸렸다. 치료제가 없다는 걸 안 파겐바움씨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성해 연구 아이디어를 모았고 캐슬만병 관련 데이터를 5년간 수집했다. 그는 메디데이터의 ‘레이브오믹스’라는 머신러닝 솔루션을 이용해 5년간 모은 데이터를 불과 3개월만에 정렬하고 통합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단서인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마커를 타깃팅한 치료물질 임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파겐바움씨의 상태는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디데이터 창업자겸 공동 CEO인 타렉 셰리프(왼쪽)와 글렌 드브리스가 ‘메디데이터 넥스트 뉴욕 2018’에 참석한 관계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는 12월 미국혈액암학회(ASH)에서 정식으로 발표될 예정인 이같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스토리가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스프링스튜디오에서 열린 ‘메디데이터 넥스트 뉴욕 2018’에서 먼저 소개됐다.

임상 연구의 디지털 전환을 통한 신약 개발과 의료기기 개발 등 헬스케어 분야의 혁신이 가속화하고 있다. 캐슬만병 사례처럼 시장성과 경제성이 부족해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제가 없는 희귀 질환에 대한 치료법도 찾아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임상연구의 디지털 전환이 단순히 임상연구를 효율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24일(현지 시각) 열린 ‘메디데이터 넥스트(MEXT)’에서 발표자로 나선 노바티스, 셀진(Celgene), 아마존웹서비스(AWS), 맥킨지 등 글로벌 굴지의 제약바이오 기업과 첨단 IT기업, 시장조사기관은 디지털 DNA를 접목한 임상 연구로 새로운 가치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메디데이터 넥스트(NEXT)로 불리는 심포지엄은 2006년부터 미국, 유럽, 한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열렸다. 제약사,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대학병원 임상시험센터 등 메디데이터의 고객들과 제약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임상시험의 혁신을 토론하는 자리다. 이날 ‘메디데이터 넥스트 뉴욕 2018’에는 제약바이오 기업, 대학 및 연구기관, 임상시험대행기관(CRO) 등 헬스케어 분야 관계자들 1200여명이 운집했다.

◇ 1.2시간 동안 가상 임상 2000개 가능...모바일 앱으로 데이터 폭증

리타 샌즈(사진)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생명과학분야 리더는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ristol-Myers Squibb, BMS)'은 최근 1시간이 조금 넘는 1.2시간 동안 2000건의 임상시험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었다"며 "가상의 임상시험 결과 분석을 통해 실제 임상시험 참여 환자수와 임상시험 기간, 연구비용 등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클라우드 솔루션을 기반으로 임상I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메디데이터의 클라우드 솔루션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AWS는 메디데이터의 솔루션으로 임상연구 설계에 관한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샌즈 리더는 헬스케어 관련 모바일 앱이 늘어나 임상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임상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모바일 앱의 경우 간단한 사용자 동의 절차를 통해 개인 헬스 및 임상 데이터를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렉 셰리프 메디데이터 CEO는 기조강연에서 "2014년에는 전세계에서 7500건의 임상연구가 이뤄졌지만 불과 4년이 지난 올해 2배에 달하는 1만5000건의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급증하는 헬스케어 분야 임상연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제레미 숀(사진) 노바티스 디지털 비즈니스 글로벌 헤드(부사장)는 "최근 2년간 만들어진 (헬스케어 관련) 데이터가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 생겨난 헬스케어 데이터보다 많다"며 "이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를 더 빠르고 저렴한 비용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헬스케어 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노바티스는 최근 디지털 임상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메디데이터의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했다.

숀 부사장은 "노바티스는 약 150만개의 치료후보물질을 약물 스크리닝 기술을 통해 아카이브에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수백만개가 넘는 세포 및 유전체 타입을 고려해 특정 질환에 대해 어떻게 저렴한 비용으로 타깃팅할 것인가가 고민거리"라며 "결국 대규모의 데이터셋을 의미있는 데이터로 연결하는 게 앞으로 제약바이오 기업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규제 당국도 변화...데이터 분석 시장 더 커질 것

임상 연구의 디지털 전환에 맞춰 규제 당국의 의미있는 변화도 진행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조사기관 맥킨지&컴퍼니의 사스트리 칠루쿠리 헬스케어산업 분야 파트너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디지털 임상연구 분야 산업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정책과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며 "대표적인 게 2016년 말 미국 의회를 통과한 ‘21세기 치료법(21st Century Cures Act)’"이라고 말했다.

메디데이터 넥스트 뉴욕 2018에는 약 1200명의 업계 관계자들이 운집했다.

21세기 치료법은 의약품 및 의료기기 승인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게 골자로 환자들이 빠르게 치료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희귀 질환 치료법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임상연구를 빠르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하는 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임상 연구를 빠르게 앞당기는 의료 빅데이터 관련 솔루션과 분석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의약품 및 의료기기 시장 연평균 성장률과 병원 진료 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각각 6%와 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료 데이터 분석과 이를 지원하는 기술 시장은 같은 기간 연평균 2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칠루쿠리 파트너는 "실제로 아마존과 페이스북,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등이 2017년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만 70억달러(약 8조원)에 달한다"며 "의료 빅데이터가 헬스케어 시장에서의 수익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