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업에 1조원 긴급 투입
노동시간 단축 연착륙 방안 마련…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될 듯

정부가 다음달 6일부터 내년 5월 6일까지 6개월 간 유류세를 15% 인하하고,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2~3개월짜리 단기 일자리 5만9000개를 만드는 등 경제 살리기용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고용 참사’에 뒤 이은 경기하강 조짐에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등장했던 정책을 쏟아내는 형국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최근 고용·경제 상황에 따른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대책은 최근 투자 감소 등 경기 둔화 조짐과 4개월 연속 취업자수가 10만명을 밑도는 고용 부진에 대한 긴급 처방전에 가까웠다. 앞서 23일 사전 브리핑에서 고형권 기재부 1차관은 "현재 경제 상황을 계속 놔둘 경우 경제 및 고용 여건 개선이 어렵고 나아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 전반에 심리적인 반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9월초부터 정부가 준비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같은 때에 사용했던 정책이 나온 것은 경기를 반전시키겠다는 정부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고도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 의욕적으로 도입했던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도 기업현장의 실태에 맞게 수정·보완될 전망이다. 현재 3개월로 규정된 탄력근로제를 한 번에 실시할 수 있는 최대기간을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6개월간 2조원 규모 유류세 감세

이날 발표된 대책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유류세 인하안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이후 10년만이다. 정부는 내수진작을 위해 다음달 6일부터 내년 5월 6일까지 유류세를 15%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유가 상승과 내수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서민 등의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고 차관은 "이왕 유류세를 인하한다면 국민들이 체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인하폭을 15%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기재부 안팎에서는 인하폭을 10%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

휘발유는 리터(L) 당 111원, 경유는 리터 당 79원, LPG(액화천연가스)는 리터 당 28원 정도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재부는 보고 있다. 유류세 경감 규모는 2조원 안팎이다. 기재부는 "유류세를 인하해도 SOC(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투자재원은 여유 자금이 충분해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류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와 자동차세(교통세의 26%), 교육세(교통세의 15%)로 각각 구성되어 있는 데 교통세의 80%는 SOC 전용 예산인 교통시설특별회계에 쓰도록 되어있다. 이 때문에 유류세 인하가 SOC 예산을 줄이는 결과를 나올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5만9000개 규모로 '맞춤형 일자리'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올 연말까지 2개월 정도 시한을 두고 예산이 할당된 초단기 일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고 차관은 "청년에게는 취업 역량 확충 기회를, 50~60대 신중년에게는 은퇴 직후 실업이 장기화돼 노동시장 복귀가 어려운 '이력효과' 방지를, 노년층은 소득 보전을 각각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은 연말까지 다 쓰지 못하고 남은 불용예산과 예비비 등을 전용해 충당할 계획이다.

주요 분야별로는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 등 청년 일자리 1만8000개 △안전·시설점검 4000개 △행정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 8000개 △대국민 서비스 현장인력 1만1000개 △공공근로 1만8000개 등이다. 다만 "필수 공공서비스, DB 구축, 실태조사 등은 필요 시 내년에도 관련 일자리를 공급할 것"이라고 기재부는 밝혔다.

이 밖에 청장년 실업자 등 취업역량 제고를 위한 직업 훈련 예산이 추가 편성됐다. 상담-훈련-취업을 연계한 프로그램인 ‘취업성공패키지’ 지원 대상이 19만명에서 22만명으로 3만명 늘어나고, 실업자 내일배움카드도 24만명에서 24만5000명으로 5000명 지원이 늘어난다.

◇산악 케이블카 설치 쉬워진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돕기 위한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해양·산악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해양관광진흥지구, 산림휴양관광특구 등 특구(特區)를 지정해 해당 지역에서 건설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지난 9월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10월부터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정 신청을 받고 있는 해양관광진흥지구는 신청요건 완화가 추진된다. 현재 신청을 위해서는 200억원 이상 투자계획과 10만㎡ 이상 면적에 대한 개발 계획이 필요하다. 또 산림휴양관광특구를 새로 신설해 해당 지역에 산지 규제를 완화한다. 기재부는 "산악 케이블카 등 규제로 건설이 어려웠던 관광 시설 설치가 쉬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전선 인근 군사보호지역 지역 가운데 일부가 연내 지정 해제 된다. 정부는 "입지 규제 가운데 가장 센 게 군사보호지역인데, 이를 해제해 접경 지역 개발을 도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발제한구역 내에 취수, 실내생활시설, 도서관 등 생활 SOC 시설 규제가 완화된다. 또 개발제한구역 해제 지역에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인근 중소기업들도 입주할 수 있게 된다.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가 송도 앞바다 위를 오가고 있다.

원격진료 및 스마트폰·스마트워치 등 IT기기를 이용한 의료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도 발표됐다. 집에 방문한 간호사와 멀리 있는 의사가 스마트폰 등으로 원격 협진을 하거나 지역의 작은 병원과 대형 병원 의사가 원격 협진을 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 체계가 마련된다. 또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건강관리서비스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AI(인공지능)·로봇 등 첨단 의료기기는 건강보험 적용 과정을 따로 마련해 신속히 상용화될 수 있도록 했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차량, 숙박 등에서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은 원칙적인 언급에 그쳤다.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을 위해 신교통서비스를 활성화 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방안을 함께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숙박도 허용범위 확대와 투숙객 안전 확보 등 제도정비를 함께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고 차관은 "부처간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올 연말 따로 관련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산업 1조원 지원, 공장 증설 규제 맞춤형 해소

현대기아차 부진, 한국GM 구조조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산업 지원을 위해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에서 1조원 규모로 우대 보증을 제공한다. 조선업은 기자재업체에 대해 3000억원 규모로 보증 제공하고, 중소 조선사 대상 선수금환급보증(RG)도 늘린다.

기업의 신규 투자 가운데 각종 규제를 해결하느라 지체되고 있는 건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풀어주기로 했다. 포항 영일만 공장 증설, 여수 국가산업단지 입주기업 공장증설, 여수 항만 배후단지 개발 등 내년 상반기까지 2조3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도한다. 또 해외에 나갔다 다시 국내로 돌아온 ‘유턴 기업’에 대해 입지·설비 보조금 및 법인세 감면 혜택을 확대한다. 이전에는 대기업은 보조금 지원 대상이 아니었고, 중소·중견기업은 해외 사업장을 청산하고 모든 생산 설비를 국내로 되돌려야 했지만 해외 사업장을 축소하는 경우도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 대기업의 부분 복귀도 법인세 감면 대상에 포함된다. 이밖에 관세 감면 혜택을 대기업이 받을 수 있게 된다.

주거, 환경·안전, 신재생에너지 등에서 주요 공공기관 투자를 올해 17조9000억원에서 내년 26조1000억원으로 증액한다. 노후 상수도 정비 사업 대상을 군 지역에서 시 지역으로 확대하는 시기를 종전 2021년에서 2019년으로 앞당긴다. 도심 노후 청사 재개발 시 체육시설, 주차장 등 생활 SOC 시설 건설도 가능해진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추진"

정부는 기업 일선 현장에서 개선요구가 많이 제기된 노동시간 주 52시간 단축에 대한 연착륙 방안도 만들 계획이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기간을 확대하는 등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 방안을 연내 구체화하겠다"면서 "기업의 근로시간 활용 유연성과 근로자 노동권 보호가 조화되도록 단위기간 확대 및 임금보전 방안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고 차관은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을 것"이라며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는 기업들이 가장 빈번하게 개선을 요구했던 부분이다"고 말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지난 23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근로시간 단축 제도 연착률 방향을 마련해야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근로시간 단축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탄력근로제 단위기간(탄력근로제를 한 번에 실시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은 3개월인데, 이를 늘리겠다는 게 청와대와 정부의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