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9월 판매량 마이너스(-) 15%, 올 예상 적자 1조원, 최근 6년간 누적 적자 3조5000여억원….

지난 5월 노사와 정부가 극적으로 타협,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던 한국GM의 최근 성적표이다. 5개월 전 노조가 군산공장 폐쇄와 2700여 명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고 정부와 GM 미국 본사가 총 70억5000만달러(약 7조6000억원)를 지원하는 회생 로드맵을 만들 때만 해도 희망이 보이던 한국GM이 다시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등 돌린 노사 - 22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최종(오른쪽) 한국GM 부사장과 임한택(왼쪽) 금속노조 한국GM 지부장이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앉아 있다. 이날 산업은행 국감은 GM의 한국 시장 철수설 등이 집중 거론됐다.

매출 추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GM이 연구·개발 법인 분리를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동의 없이 일방 밀어붙이고 노조는 총파업을 경고하고 있다.

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동걸 산은 회장은 "한국GM에 지원하기로 한 8000억원 중 아직 집행하지 않은 4000억원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집행을)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산은, GM 노사가 모여 도출한 합의를 깰 수 있다는 발언인 동시에 GM 본사에는 "10년간 한국에서 생산하겠다"고 한 약속을 깨고 한국을 떠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상황이 다시 꼬이자 한국GM이 '제2의 호주GM'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GM은 2013년 호주에서 철수설이 불거졌을 때 "우리는 여기 남을 것이다(We are here to stay)"라는 TV 광고까지 냈지만, 정부 보조금이 끊기자마자 2013년 말 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2003년 한때 연 40만대를 생산하던 호주 자동차 산업은 지금 단 한 대의 자동차도 생산하지 못하는 불모지가 됐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GM이 비록 한국에서 10년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한국GM의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철수를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공장을 살리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중앙노동위가 한국GM 노조가 신청한 쟁의 조정에서 "파업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며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노조는 이날 대책회의를 열고 노조 간부 200여 명이 26일 월차를 내는 방식의 '간부 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GM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호주의 내수 판매가 부진하자 호주GM 공장의 문을 닫는 철수 프로그램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호주의 높은 인건비와 낮은 생산성은 글로벌 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꼽혔지만 강성 노조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호주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호주GM을 연명시켰다. 2010~2012년 친환경차 연구개발비 등의 명목으로 GM에 약 4억2500만호주달러(약 3400억원)를 줬고, 2001~2012년까지 인건비 보조금 명목으로 20억호주달러(약 1조6000억원)를 지급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지속된 적자는 해소되지 않았다. 2013년 호주GM 노조가 3년간 22% 임금 인상을 밀어붙이면서 인건비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 적자 누적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뒤늦게 노조가 양보의 뜻을 비치는 등의 유화책도 나왔지만 결국 GM은 2013년 12월 호주 정부가 추가 지원금 요청을 거절하자 곧바로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적자 쌓이는 한국GM, 제2의 호주GM 되나

한국GM은 2012년부터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반짝 흑자를 제외한 작년까지의 5년간(2012, 2014~2017) 누적 적자만 2조5000억원이 넘고, 1조원의 적자가 유력한 올해까지 포함하면 3조5000억원대다.

한국GM은 지난 5월 정상화에 돌입한 후 6월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6% 상승하는 등 회복하는 듯했으나 7월 -18%, 8월 -46%, 9월 -13% 등 4개월 평균 -14.8%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군산공장 폐쇄와 2700명 희망퇴직으로 인건비가 감소했음에도, 8400억원의 적자를 냈던 지난해보다 더 많은 적자가 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GM 입장에선 다루기 어려운 강성 노조에 대한 불만과 돈을 투입하고 손해만 볼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노조와 한국 정부는 끊임없이 GM을 의심하고 있다. 호주GM의 사례를 들춰 보면 기시감이 들 정도로 지금 한국GM 사태와 똑 닮아 있다.

◇'뉴GM'의 선택과 집중… 한국 공장도 구조조정 가능성

GM의 공장 철수는 호주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파산 위기에 처한 GM은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구조조정 전문가들을 동원해 회생시켰다. 북미 공장 47개 중 17개를 폐쇄했고, 생산직 2만1000명을 감원했다. 이후 탄생한 '뉴 GM'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전 세계 돈 안 되는 공장과 브랜드를 정리해왔다. 쉽게 말해 경쟁력이 없는 공장은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특히 2014년 1월 취임한 메리 바라 GM 회장은 인도네시아·러시아·태국뿐 아니라 제2의 중국이라는 인도에서도 공장 2곳 중 하나를 정리했다. 글로벌GM의 전략에 따라 한국 공장 역시 언제든지 철수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야

GM의 이 같은 전략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되는 가운데 완성차업체 간 경쟁은 치열해져 주요 기업들의 수익성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AI 등의 발달로 차량 공유 시장이 커지는 등 주요 시장에서 이미 자동차 수요 자체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GM이 살아남으려면, 갈등을 키워 GM 측에 '철수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보다, 미래차 시대를 맞아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GM이 당장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 장부상 대출금과 투자 금액 등 4조원 이상의 손실이 부담돼 머뭇거리고 있겠지만 향후에도 지금처럼 연 1조원의 적자가 계속된다면 누가 남아 있으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서로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한국 공장을 매력적인 곳으로 살리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