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모씨는 온라인·모바일을 통한 가구·가전제품 구매를 즐긴다. 문제는 집에 배치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눈여겨 본 탁자가 거실의 다른 가구와 어울릴지, 최신형 세탁기가 베란다에 들어갈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제품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공간과 잘 어울리는 지 알 수 있게 됐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지난 달 구매하려는 상품을 3D 화면에 가상으로 배치해 보는 AR 체험 서비스 ‘에이알뷰’를 출시했다. 롯데홈쇼핑 앱에서 세탁기를 선택해 AR 기능을 적용하면, 휴대전화 화면에 생활공간과 세탁기가 동시에 등장한다. 손가락으로 세탁기의 위치를 옮겨 원하는 장소에 배치할 수 있고 크기 측정 기능을 사용해 화면상에서 상품을 배치할 공간의 길이까지 파악이 가능하다.

롯데홈쇼핑 에이알뷰

AR 서비스는 롯데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일환이다. 그동안 축적한 고객 데이터에 IT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에게 편리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롯데그룹은 앞으로 모든 유통채널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고 2022년까지 IT 역량 강화에만 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그룹 등 국내 주요 유통회사들이 인공지능(AI), 로봇, VR 등 디지털 기술 투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개편되면서 전통 유통채널이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조(兆) 단위의 자금을 투입해 ‘유통 혁신’에 나서고 있다.

롯데그룹은 백화점과 편의점, 마트,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채널에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디지털화의 일환으로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무인 점포를 선보였으며, 롯데제과는 자체 개발한 AI를 활용해 식품 트렌드를 미리 분석해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미래형 매장’ 구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2020년 여의도에 들어설 현대백화점에는 아마존의 무인 자동화 매장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네이버 인공지능 스피커 ‘클로바’와 손잡고 22일부터 음성 쇼핑 서비스도 시작했다. "30대 여자 선물로는 뭐가 좋을까" 등의 질문을 하면 그동안 30대 여성이 현대백화점에서 많이 구매한 제품을 음성으로 안내 받을 수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현대백화점(069960)은 VR 기술에도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연내 개점을 목표로 강남역에 국내 최대 규모의 VR 테마파크를 준비하고 있다. 만화 ‘건담’으로 유명한 일본 반다이남코홀딩스의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활용한 VR 게임과 즐길거리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마트(139480)는 사내 IT 연구 조직 S랩을 설립하고 이마트에 AI, 로봇 등을 접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봇 페퍼가 이마트 성수점에서 쇼핑 도우미로 활약하고 하남 스타필드의 트레이더스 하남에는 자율주행 카트 일라이를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현재까지 기업들이 선보인 AR 쇼핑 서비스나 로봇 등은 사용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이 대다수다. AI 스피커의 경우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로봇도 사람을 대체할 만큼 정교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일례로 이마트가 시범 운영한 자율주행 쇼핑카트 일라이의 경우 사람이 붐비는 대형마트 환경에서 장애물을 피해가지 못한다. 회사 측도 로봇이나 자율주행 카트를 상용화할 단계는 아니며 "미래 쇼핑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실생활에서 유통과 IT를 접목한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 패스트패션 브랜드 지유(GU)의 도쿄 긴자 매장의 경우 무인 계산대를 갖추고 있다.

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옷을 계산대 하단에 넣었다 빼면, 기계가 의류 가짓수와 가격을 스스로 인식해 계산을 진행한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2015년부터 전국 수십개 매장에 무인 계산대를 도입했다.

아마존이 운영하는 무인 매장 아마존고는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기술을 통해 소비자가 쇼핑을 한 뒤 그냥 걸어나오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