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여건이 어려워진 상황이라면 한국도 아베노믹스처럼 금융완화를 통해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인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지난 18일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 기조연설 후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11월 금리인상을 예고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올해 82세인 하마다 교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 멘토로 내각부 경제사회종합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가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 후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마다 교수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려고 하는 게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금융완화 정책을 통해 경제를 좀 더 성장궤도로 올리는 것에 대해 중앙은행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다 교수와 인터뷰 직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50%로 11개월째 동결하면서도 올해 마지막 정례회의인 11월에는 인상할 뜻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금융 안정에 더 유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은이 이날 올해 성장률을 2.9%에서 2.7%로 낮출 정도로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커졌지만 한미 금리 역전폭 확대, 집값 급등 등 금융 불안 및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때가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하마다 교수는 한은이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한은이 금리를 올리려는 이유가 부동산 가격이 높아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며 "서울 등 대도시 집값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나머지 다른 지역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지역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는 것은 구조개혁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선 "최저임금을 2년간 30%가량 올리는 대폭적인 인상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보 정권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근로자들이 과연 더 풍요로울 수 있을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고도 했다.

◇ "경제 어려울 때는 금융완화 통한 수요 진작에 집중해야"

―IMF(국제통화기금)가 최근 올해 일본 성장률 전망치를 1.0%에서 1.1%로 올렸다. 세계 경제의 하방리스크가 확대됐음에도 일본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경제학계에서는 금융완화 정책이 고용이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전통적이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에 기초한 정부(의 재정투입)와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금융완화에 따른 엔화약세가 기업 수익성을 높였고 고용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금융완화를 통해 기존에 없던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이로 인해 금융완화정책에 부정적이었던 BIS(국제결제은행)의 시각도 좀 달라진 것 같다. IMF가 일본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은 이런 점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마다 고이치 교수.

―세계 경제의 하방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트럼프의 정책이 세계 무역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미국 경제를 바꾸고 있는 측면도 있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7%로 내리면서도 11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거시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는데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바람직한가.

"한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한 다른 나라에 비해서 금리 수준이 높다. 금리수준이 높은 한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 거시경제 여건이 어려워진 상황이라면, 한국도 아베노믹스 처럼 금융완화를 통해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려는 이유가 부동산 가격이 높아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 집값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나머지 다른 지역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 특정 지역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는 것은 (금리정책이 아니라) 구조개혁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과도한 민간부채가 거론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2008년 이후 최근까지 가계부문 부채가 두 배 가량 증가했다. 부채 증가 속도를 줄이기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한번 올리게 되면 내리기 힘든 속성이 있다. 금리인상은 국민 생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점을 따져보면 부채 증가는 막연한 걱정거리일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채는 자산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부채가 늘어나더라도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 갚을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늘어난 부채가 생산적인 활동에 투자돼서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으로 부채를 갚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채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단순히 부채가 늘어나는 것 만으로 ‘우려할 상황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편견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부채를 갚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이를 쉬쉬했고, 결국에는 부동산 자산을 팔더라도 부채를 갚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부채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 리먼 사태처럼 한 번에 무너지기 쉬운 위험요소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채 문제는 부채가 왜, 어떤 방식으로 늘어나는지 구조를 일일이 따져봐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나는 반드시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트럼프 정부의 여러가지 금융규제 완화정책으로 인해 위험요소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는 점도 이야기하겠다. "

하마다 교수가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 강연에서 발표한 자료. 프리젠테이션 자료에는 “(인플레 억제에 집착하는) 옛날 BIS의 보수적인 원칙을 잊어버려라”고 적혀있다.

◇ "생산성 증가만큼 임금 올라가야 국민경제 파이 커져"

―한국의 중앙은행 당국자들에게 조언한다면.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긴축정책을 강행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의 경제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금융완화 정책을 통해 경제를 성장 궤도에 올리는 것에 대해 중앙은행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 괜찮을 것 같다. 수요가 확충돼야 만성적인 청년실업 등 실업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근로소득을 늘리기 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 중이다. 수요를 확충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정부가 법정 최저임금을 올해와 내년 2년간 약 30% 인상했다. 이런 정책이 안정적인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일반적인 경제학 상식으로 보면, 근로자들이 임금을 올려준 것에 비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게 ‘국민경제 파이(pie)’를 늘리는 방법이다. 일한(생산성 증가) 만큼 임금이 오르는 게 주류경제학의 원리다. 만약 한국이 만성적인 수요부족으로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부자들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은 수요를 확충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저임금을 (2년 동안)30% 가량 올리는 것은 상당히 대폭적인 인상이다. 시장이 많은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진보정권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근로자들이 과연 더 풍요로울 수 있을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금융완화를 통해 수요를 확충하려고 했던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수요 확충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완화와 재정확대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전략인가.

"금융완화는 제로금리에 가까워질수록 효과가 줄어드는 반면 재정지출을 너무 많이하게 되면 지금 같은 금리상승기에는 (국채발행 증가 등으로 인해) 실질 금리가 올라가는 폐해가 일어난다. 수요 확대를 위해서는 재정과 금융 모두 활용해야 하는데, 재정지출은 정부 돈을 쓰는 것이라 정부가 수요 확대를 주도한다. 민간 부문인 기업의 활력을 살리는 방식으로 수요를 확대하는 측면에서는 금융완화가 효과적일 수 있다."

◇ "아베노믹스 낙관 안해…효율성 높이는 교육혁신 등 구조개혁에 성과내야"

―아베노믹스가 이끄는 일본 경제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아베 노믹스가 놓여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서 낙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하마다 고이치 교수.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경제는 GDP(국내총생산)로 보면 많이 성장할 수 없다. 한국, 중국, 유럽 등에서 돈을 벌어서 들어오기 때문에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 생활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GDP에 비해 NNI(국민순소득)가 높은 이유다. 인구 및 노동성장률이 높지 않다는 게 일본 경제의 약점이다. 그래서 훌륭한 인적 자본의 공급이 적다. 일본 정부는 인적 자본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효과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세가지 화살은 금융완화정책, 소득증가, 구조개혁으로 알려졌다.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가 구조개혁으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인가.

"구조개혁은 시장과 노동조직의 효율성을 올리는 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개혁에 대한 사람들이 거부감이 크다. 특히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는 ‘스스로의 갑옷을 벗는’ 구조개혁을 원하지 않는다. 일본의 근로자가 미국의 근로자에 비해 노동 효율성이 낮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구조개혁의 방향이다.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는 요인들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개혁은 (저항 때문에) 점진적으로 추진할 수 밖에 없다."

―구조개혁 중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교육이다. 일본은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다. 그렇지만 교육의 상당부분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입시에 매달려있다. 단순지식을 암기하는 입시위주 공부라면 AI(인공지능)가 더 잘할 수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AI도 할 수 있는 입시위주 공부가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는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런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구조개혁의 방향이다. 경제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포인트 중 하나가 엔화 약세 정책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면서, 위안화 약세 뿐만 아니라 각국의 환율 정책에 대해서 간섭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엔화약세 정책이 지속될 수 있을까.

"트럼프 정부의 무역·환율 정책이 효과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트럼프 정부 정책으로 엔화 약세가 조정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과연 줄어들지 의문이다.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국가가 적자 상태이고, 더 적게 소비하는 국가가 흑자상태라는 게 경제원론에 나오는 법칙 아닌가. 그리고 엔화 약세에 대해서 요즘에는 미국에서 비난하는 이야기가 좀 덜 나오는 것 같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여러가지 감세정책으로 인해 미국 주식시장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런 점이 (환율 측면에서는) 일본에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12월을 포함해)내년까지 총 4회 이상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현재의 완화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일본은행은 섣부른 긴축정책으로 국민 경제에 큰 손해를 끼쳤던 전력이 있다. 이런 역사 때문에 긴축 전환에 소극적이다. 우선 내년 10월로 확정된 소비세 인상까지는 현재의 완화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소비세 인상으로 인한 수요 위축이 나타나는지를 우선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변동 환율제 시스템 아래에서 각국의 금융정책 차이를 환율이 반영하기 때문에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곧바로 따라서 긴축으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계속 올리는 상황에서 일본만 완화정도를 유지하면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행도 (내년 10월 이후에는)현재의 양적완화 수준을 축소하고 (양적완화 이전의) ‘제로금리’에 가깝게 되돌아가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