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퇴사 후 설립…매출 345억원 회사로 키워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 가동률 높이고 불량품 줄여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소 두고 신기술 연구개발

"끊임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지난 18일 만난 최운규(56) 비스텔 대표가 인터뷰를 시작하자 건넨 말이다. 최 대표는 1991년 잘 다니던 삼성전자에 사표를 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자동화 추진단에서 일하다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다. 당시 국내에선 미국·일본에서 개발한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사용했다. 국산 프로그램은 없었다.

최 대표는 선배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고 갖은 시행착오 끝에 반도체 공장 자동화 시스템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다시 도전했다. 이후 2000년 비스텔을 창업했다. 비스텔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온도·압력·빛·화학약품 등이 언제, 어느 정도의 양을 투입해야 하는지 최적의 조건을 설정하고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공장에서 비스텔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불량품을 줄이고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설정한 조건에 맞지 않으면 바로 현장 엔지니어에게 알려준다. 어떤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비스텔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 점유율 1위다. 201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세우며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일본·중국·미국 등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비스텔은 지난해 전체 매출(345억원)의 53%를 해외에서 올렸다.

최운규 비스텔 대표는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했다.

-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도전은 비스텔의 핵심 가치이다. 내 삶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삼성전자를 나온 것은 물론, 비스텔을 설립한 것도 그랬다. 비스텔 내에선 ‘실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시행착오’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원하는 것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스텔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했다."

- 잘 다니던 삼성전자를 나온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반도체 부문 공장 자동화팀에서 일했다. 당시 공장 자동화 시스템은 미국과 일본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국산화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삼성 소속으로 개발하면 프로그램을 삼성전자만 쓸 수 있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사용되는 것을 꿈꿨다. 선배와 함께 삼성에서 나와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에서 9년 동안 일했고 2000년 비스텔을 창업했다."

- 비스텔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

"과거 생산 현장에선 제품의 질이 떨어져도 잘 모르고 설비를 가동했다. 이를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제품을 다 버려야 했다. 돈을 들여 판매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비스텔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불량 제품을 실시간으로 잡아낼 수 있다.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미국의 주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비스텔의 제조 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유다."

-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운영 중인데.

"한국과 미국 연구소를 동시에 운영 중이다. 실리콘밸리 연구소에서 20여명의 현지 연구원이 일한다. 그들은 현지에서 개발되는 최신 기술을 조사하고 연구한다. 한국에는 30여명의 연구원이 있다. 미국에서 조사를 하고 핵심 기술을 개발하면 한국에서 현장 요구사항을 반영해 제품을 개발하는 구조다.

한국에만 연구소를 두면 미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빠르게 조사할 수 없다. 최신 기술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데만 몇 개월이 걸린다. 또 국내 연구원이 새로운 기술을 잘못 이해하면 비스텔의 기술 개발 방향이 완전히 반대로 갈 수 있다. 연구개발의 속도는 높이면서 리스크는 줄일 수 있다.

비스텔은 기술 기업이다.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해외 법인과 사무소를 합해 회사 전체 직원 수가 350명인데, 그 중 160명(46%)이 연구 인력인 이유다.

지난 7월에는 미국에서 열린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전시회 ‘세미콘 웨스트(Semicon West)’에 참석, 최근 개발한 ‘제조 공정 실시간 감지 프로그램’으로 베스트 제품상을 수상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해 기존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다 더 정확하게 제조 공정상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최운규 비스텔 대표가 회사 연구원과 반도체 제조 관리 프로그램 개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일본과 중국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해외 시장을 어떻게 파고 들었나.

"해외 매출 중 일본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2013년 일본 시장을 공략했지만 처음부터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특히 일본은 기술에 대한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기술력으로 정면 승부했다. 그 결과 3년 전부터 일본 시장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현재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이 비스텔의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앞서 2009년에는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은 일본에 비해 고객 수는 많지만 서비스 가격이 저렴하다. 지난해 기준 중국에서 해외 매출의 20%를 올렸다.

해외 시장을 개척할 때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순간에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특히 해외에 네트워크가 없다면 더 그렇다. 비스텔도 이런 상황이었다. 직접 해외로 나가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영업을 했다. 현재의 네트워크를 만들기까지 9년 이상이 걸렸다."

- 엔지니어 출신으로, 조직 관리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10년 회사 직원 수가 100명이 넘었을 때와 2016년 매출이 300억원을 돌파했을 때 어려움을 겪었다. 조직이 급격하게 커지자 혼자서 관리하는 게 힘들었다.

직원이 50여명일 때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러나 100명이 넘자 조직 관리 자체가 힘에 부쳤다. 회사 전체가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외부 컨설팅을 받고 잘 아는 다른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시스템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제품 개발과 기획, 영업, 유지·보수 등 업무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그 틀에 따라가도록 했다.

2016년 일본·중국·미국 등 해외 매출이 늘기 시작할 때도 조직 관리에 어려움을 느꼈다. 해외 인력은 우리와 문화가 다르고 일하는 시간도 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의사 결정을 해야 했다. 국가별로 책임자를 뒀다. 연구개발, 제품 출시 등 도전 과제를 정하고 의논하면서 사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 기술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재다. 인재 양성은 어떻게 하나.

"유능한 인재를 뽑는 것 자체가 어렵다. 우리 뿐만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다. 비스텔은 엔지니어, 직원에게 자유를 준다.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연구하고 도전할 수 있다. 이는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지키고 있는 원칙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과도 낼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하다.

또 국내 연구원을 미국 실리콘밸리 연구소로 보내는 순환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개발되는 따끈따끈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 신기술 세미나 등 기술 교육도 진행한다."

- 앞으로 계획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미국·유럽 등 해외 사업을 확대하면 최대 700억~800억원까지 매출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매출보다 2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동시에 자동차·철강·석유화학·바이오 산업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4년 전부터 각 분야 기업을 만나 비스텔의 제조 관리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제조업체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