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과의 협상은 우리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고 GM도 상대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인 '윈윈'에 준하는 협상이었다"
이동걸 산업은행(이하 산은) 회장은 지난 5월 11일 산은 기자실을 방문해 미국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한국GM 경영정상화 합의에 대해 이같이 자평했다.
당시 합의에서 산은은 한국시장 철수설이 불거졌던 한국GM에 약 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고, 이 회장은 GM과 산은이 '신뢰'를 형성했다며 GM이 약속한 6조8500억원의 투자와 향후 최소 10년 한국GM 운영, 산은에 대한 비토권 부여 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협력사를 포함해 고용인력이 15만명 이상인 한국GM을 살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한 몸에 받았다. 물론 GM과의 협상은 범정부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한국GM 2대주주(지분 17%) 산은의 수장인 이 회장은 실무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협상이 마무리된지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GM은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GM이 최근 한국GM을 생산법인과 연구법인으로 분리하겠다고 나서면서 이해당사간 신뢰가 깨져버린 것이다. 연구법인 분리건은 산은과 GM이 맺은 경영정상화 방안에는 들어있지 않은 내용이다.
이에 대해 한국GM 노조는 '인건비가 적게 드는 연구법인만 남기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생산법인을 구조조정하겠다는 의도'라고 반발하며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산은도 일방적인 법인분리를 막겠다며 최근 인천지법에 한국GM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한국GM 주총은 오는 19일 열린다. 그러나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수용하더라도 한국GM은 향후 다시 일정을 잡아 주총을 열면 그만이다.
GM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은 GM 입장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며 "주총 일정을 늦출뿐, 핵심인 법인분할을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지난 5월 GM과의 협상에서 확보했다던 비토권도 이번 법인분할에서는 확실한 견제장치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의 비토권은 GM의 자산매각 등 한국철수와 관련한 특별결의사항에 국한돼 있다. 더욱이 비토권은 한국GM 총자산의 5% 이상을 매각할 때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국GM에 따르면 신설될 법인의 제무재표상 자산가치는 3500억원 수준으로 한국GM 총자산인 7조1000억원의 4%에 해당한다. 결국 산은은 한국GM의 법인 분할이 한국철수와 연관된 것이라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비토권을 통해 이번 법인분리를 막기에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GM은 이미 산은 비토권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김앤장을 통해 완료했고 비토권으로 주총을 막을 법적 권한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법인 분리건이 논란을 낳으면서 한국GM 사태의 일등공신인 이 회장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은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산은이 8000억원을 투입해 일단락 지은 한국GM 경영정상화 합의에 대해 '가성비' 측면에서 손해보지 않은 유리한 협상이었다고 말해왔다.
이 회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부실기업인 금호타이어, STX조선, 한국GM을 연달아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또 문재인 정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그가 자본확충 예산 배정 문제를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요구하는가 하면, 산은의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에 예산 배정을 촉구해 정부 예산 5000억원을 따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승승장구했던 이 회장도 이번 논란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며 "한국GM의 법인 분리가 한국시장 철수로 연결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 회장이 얘기했던 GM과의 신뢰관계는 깨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