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업체 ADT캡스, 미국 의약품 생산 회사 암팩, 북미 셰일가스 운송·가공 사업자 브라조스, 베트남 최대 식·음료 기업 마산그룹….
올 들어 SK그룹이 인수&합병(M&A)했거나 대규모 지분 투자를 한 회사들이다. SK그룹은 올 들어서만 6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IB) 고위 임원은 "요즘 M&A 시장에서 SK그룹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며 "기업 매수자 후보 리스트에는 모두 다 올라있다"고 말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 'M&A 업계 먹깨비'라고 불렸던 롯데그룹을 제치고 SK그룹이 M&A 업계의 가장 큰 손이 됐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SK그룹이 이 과정에서 해운, 증권 계열사는 팔았다는 점이다.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해 그룹 내 구조조정도 실시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SK그룹이 적극적인 M&A를 통해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그리고 사업 구조조정까지 일석삼조(一石三鳥) 효과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재계 3위(자산 기준)인 SK그룹의 시가총액이 124조5000억원(지난 8일 기준)으로 국내 2위를 기록하는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최근 SK그룹은 특히 해외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2016년 이후 실시한 M&A나 대규모 지분 투자의 절반 이상이 외국 기업이다.
SK㈜는 올 7월 이사회를 열고 미국 바이오·제약 업체인 암팩(AMPAC) 지분 100% 인수를 결정했다. 국내 바이오·제약 업계에서 해외 제약 회사 인수·합병(M&A)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5100억원)다. 지난해에는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아일랜드 생산 시설을 1800억원에 인수했다. SK그룹의 의약품 생산 규모는 2020년 이후 160만L급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SK㈜는 지난 5월 북미 셰일가스 운송·가공 회사인 브라조스 미드스트림 홀딩스에 2700억원 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SK㈜는 작년 미국 셰일가스 운송·가공 회사인 유레카 투자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분야 투자를 본격화했다.
최근에는 동남아 최대 차량공유 회사인 그랩이 실시한 2조원 규모의 펀딩에도 참여했다. 올해 초에는 쏘카와 합작법인 '쏘카 말레이시아' 출범식을 열고 현지 최대 규모 카셰어링 서비스를 하고 있다.
SK그룹 안팎에서는 최근의 빈번한 M&A를 최태원 회장의 딥체인지(deep change) 전략과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성장 전략에서 탈피해 각 계열사 CEO가 사업을 책임지고 재편하라"는 주문 이후, 각 계열사가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지환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혁신 역량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M&A를 통해 성장을 꾀하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라며 "지금까지 SK그룹은 합병 후 통합 작업에 강점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합병 후 통합 작업(PMI)은 M&A 이후 업무와 조직 문화 등을 빨리 통일시켜 매출·영업이익 등의 분야에서 효과적인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SK그룹은 M&A를 통해 그룹의 색깔도 바꾸고 있다. 최근 SK그룹 M&A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하이닉스 인수였다. 당시 SK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3조4000억원)인 하이닉스 인수로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강력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반도체 호황과 맞물려 지난해 13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SK그룹은 하이닉스를 인수한 2012년 이후 지금까지 M&A 시장에 10조원 가까운 돈을 투자했다. 이를 통해 정유와 통신 중심의 내수 대기업에서 수출 대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주력 계열사 매각으로 사업 구조조정
SK그룹이 무조건 사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SK해운·SK증권·SK엔카 등 비주력 계열사들은 잇따라 매각했다. 이를 통해 주력 사업에 집중한다는 사업 재편 효과뿐 아니라, 금산 분리,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함께 피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8일 SK그룹은 SK해운의 주인이 투자 전문회사인 한앤컴퍼니로 바뀐다고 밝혔다. SK해운은 신주와 전환 사채 발행 등을 통해 한앤컴퍼니로부터 1조5000억원을 투자받고, 한앤컴퍼니는 SK해운의 최대 주주(71%)가 된다. 업계에서는 부채 비율 2391%인 SK해운을 정상화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난 7월에는 SK증권의 매각 작업을 마무리했다. SK그룹은 SK증권 지분 10%를 사모펀드 운용사(PE)인 J&W파트너스에 매각했다. 금산 분리 규제에 따라 SK증권을 매각했지만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의 일환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중고차 사업인 SK엔카직영을 지난 4월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한 것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