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도로나 철도, 주차장 등 유휴지 위에 건물을 지어 올려 복합 주거단지 조성을 추진한다. 토지가 부족한 서울을 '복층 도시'로 개발하는 '리인벤터 서울' 사업이다. 기존 유휴지를 활용해 주택과 공공시설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집이나 시설을 땅에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토지 공급 부족에 직면한 서울을 입체적으로 개발해 주택과 공공시설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요구를 거부하는 서울시의 추가 주택 공급 대안으로도 풀이된다.

이번 사업은 프랑스 파리시가 추진 중인 도시공간 혁신사업 '리인벤터 파리'를 벤치마킹했다. 리인벤터는 '재창조하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R

inventer(레엥방테)'를 편의상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파리의 도로·창고·주차장 등 22곳을 새롭게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과 친분이 있는 박 시장이 지난해 파리 순방 중 사례를 전해듣고 시 관련 부서에 사업 검토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 복층건물로 이렇게 변신합니다 - 프랑스 파리시가 지난 2014년부터 시작한‘리인벤터 파리’공모전 최종 당선작 중 하나인‘복층 도시(Ville multi-strates)’조감도(아래 사진). 파리 17구 끝자락에 있는 외곽순환도로 위에 1만8000㎡ 규모로 조성하는 복층 복합주거단지다. 사무실, 공공임대주택, 상점 등이 입주한다. 위쪽 사진의 빨간색 선이‘복층 도시’가 들어서게 될 부지다.

서울을 복층 도시로 만드는 '리인벤터 서울'도 파리와 마찬가지로 기존 부지의 용도를 유지하면서 새 건물을 짓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건물 중에는 1969년 지어진 종로구 낙원상가가 유사한 사례다. 낙원상가가 지어질 당시만 해도 도로법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 도로 위 건물 신축을 제한하는 법령이 따로 없었다. 1970년 관련법이 제정되면서 도로 위 공간 개발은 육교 같은 공공시설물에만 허용됐다. 그러나 지난해 도로 상·하부 공간을 상업·업무·주거 공간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사업의 숨통이 트였다. 법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서울시는 낙원상가보다 훨씬 큰 규모로 복합 주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주택이나 공공시설이 필요해도 토지가 비싸거나 부족해 못 짓는 경우가 많았다"며 "도로나 주차장 공터 위에 지으면 이를 혁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는 관련 내용을 추진하기 위해 최근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사업 계획'을 수립했다. 현재 사업 추진 대상지를 선정 중이다. 최종 대상지는 10여 곳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2월 중순 확정될 예정이다.

'리인벤터 서울'은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할 방안으로도 거론된다. 지난달 유럽 3개국 순방에 나섰던 박 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도심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임기가 많이 남지 않은 만큼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데 속도를 낼 것"이라며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리인벤터 사업 대상지 전역에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 위에 지은 공공임대주택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서울 오류와 가좌, 공릉, 안산 고잔 등 철도 부지 4곳을 행복주택 시범사업 지구로 지정해 추진했다. 운영 중인 철도 노선 위에 인공 대지를 조성해 임대주택과 기숙사를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가좌 지구와 오류 지구 행복주택은 모두 완공됐다. 그러나 공릉과 고잔 지구에선 일부 주민이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해 행복주택 사업이 무산됐다.

시 관계자는 "리인벤터 서울은 유휴지에 일반 주택, 임대주택, 사무실, 체육관 등 주민들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시설이 입주하도록 가능성을 열어뒀다"며 "이용률이 낮은 공간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도록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