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영국 여성단체들은 "아이폰은 손이 작은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반(反)여성적인 제품"이라며 비난 성명을 냈다. 애플이 올 들어 4인치대 화면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더 이상 내지 않고 5.8~6.5인치 크기의 대화면 아이폰만 출시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영국 여성단체들이 지적한 대로 한 손으로 화면 전체를 조작할 수 있는 4인치대 스마트폰이 사라지고 있다. 애플뿐 아니라 안드로이드 진영 대표인 삼성전자도 지난해 2월 이후 4인치대 제품을 내지 않고 있다. 일본 소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4인치대 엑스페리아XZ 시리즈 제품을 출시했지만 올해는 내놓지 않았다. 중국 샤오미·화웨이·오포·비보가 만든 40만~60만원대 중저가폰도 모두 5인치 이상의 대형 화면을 갖춘 제품들이다.

스마트폰 리뷰 업체 GSM아레나에 따르면 올해 출시된 6인치 이상 스마트폰은 삼성·애플·샤오미·오포 등 13곳 110종에 달한다. 스마트폰 시장조사업체 IDC는 "2022년까지 전 세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98%는 5인치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며 "6인치 이상 제품 비중도 36%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영상 바람 타고 6인치대 폰 인기

왜 작은 화면 스마트폰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제조사들은 매년 업그레이드되는 고성능 부품들을 탑재하려면 스마트폰이 커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스마트폰 개발 부서는 신제품 개발 때마다 한정된 공간에 다양한 부품을 집어넣기 위해 '땅따먹기'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분해해보면 다양한 부품과 회로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우선 화면 아래에 기판과 배터리가 있다. 기판에는 AP(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부품)와 카메라·메모리(저장장치)·센서 등 수십 가지 칩이 붙어 있다. 기판은 부품이 들어서는 땅이나 다름없다. 땅이 좁아 부품 간격이 촘촘해지면 작동 시 에러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트렌드인 듀얼(2개)·트리플(3개) 카메라, 안면인식 센서, 입체 음향 스피커 등 첨단 부품을 탑재하려면 스마트폰이 커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서 소비하는 콘텐츠가 텍스트에서 동영상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것도 주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동영상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5~6인치 대화면 스마트폰은 필수가 됐다"며 "스마트폰은 더 이상 한 손으로 조작하는 기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며 글을 읽는 수준을 넘어서 동영상과 게임을 즐기는 것이 대세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광고업체 인크로스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1인당 월평균 유튜브 이용 시간은 1019분으로 2년 전(518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스마트폰 앱 중 사용 시간도 유튜브가 단연 1위다.

아예 스마트폰이 PC를 대체하는 움직임도 있다. 스마트폰 저장 용량이 PC와 비슷한 수준인 512GB(기가바이트)까지 늘어났고, 고성능 AP가 탑재돼 키보드나 마우스만 연결하면 문서 작업부터 사진·동영상 편집까지 가능하다. 삼성전자·화웨이는 스마트폰을 대형 모니터나 TV에 연결시켜 작업이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모드를 지원하고 있다.

작고 가벼운 스마트폰 찾는 수요 여전…제조사는 경량화 고민

하지만 한 손에 잡히는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이용자는 여전히 많다. 5인치가 넘어가면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 조사 결과를 보면 4.7인치 크기인 아이폰8은 5.8인치 대화면 아이폰X(텐)과 같은 점유율(5.9%)을 기록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 같은 소비자 불편을 의식해 화면 크기를 키우더라도 스마트폰 무게를 줄이려 노력 중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출시한 V30와 최근 출시한 V40 내부 프레임(뼈대)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무게를 줄였다. 갤럭시노트9의 경우 전작인 노트8보다 작은 기판을 사용해 무게 증가 폭을 3% 정도로 최소화하면서 배터리 용량을 전작보다 21%까지 키웠다.

IT(정보기술)업계 관계자는 "중저가폰에도 듀얼 카메라 같은 최신 기술이 기본으로 들어간다"며 "이미 '대화면=고성능' 공식이 자리 잡혀 가는 상황에서 업체들이 별도 라인을 운영해 카메라 숫자가 적고 성능이 떨어지는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건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