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발광다이오드(LED), 파운드리 등 특정한 기술 분야의 경우 숙련된 엔지니어의 노하우가 곧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각 기업마다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전략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 "외국인은 출입금지"…극단적 수비 전략도 등장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경우 가장 극단적인 수비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특히 TSMC의 핵심 직원이었던 양몽송(梁孟松) 부사장이 삼성전자로 이직한 한 사건이 큰 계기가 됐다. 양 부사장은 삼성 반도체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내며 세계 최초 14나노 핀펫 공정을 개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대만 TSMC의 반도체 공장 전경.

이후 TSMC 내부적으로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극도로 높아졌다. TSMC는 현재 핵심 생산라인이나 연구시설 등 중요한 지역에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을 출입금지 시키는 사규를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해당 사건 이후 TSMC 내부적으로 외국인 임직원을 배척하는 분위기마저 생겼다"며 "기술 유출을 국가적 스파이 행위로 간주하는 법적 장치도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키우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출신 엔지니어 영입에 혈안이 돼 있다. 특히 중국이 노리는 인재들은 오랜 기간 삼성, SK하이닉스에 재직하다가 최근 2~3년 사이에 퇴직한 전직 임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주도로 대응에 나섰다. 두 기업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함께 오랜 기간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핵심 엔지니어로 일한 퇴직자들이 교육자로 다시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선순환 프로그램을 고안해 실행하고 있다. 다만 아직 프로그램 규모가 크지 않아 성과는 뚜렷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

◇ 기업 자체 노력으론 불가능…美처럼 법제도 개선해야

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자구책보다는 미국 등 선진국 사례처럼 강력한 법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찌감치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추격에 직면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기술 유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법령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IT 전문 로펌 테크앤로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기업의 영업비밀, 기술 유출과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채택해 고의나 악의에 의한 기술 유출의 경우 손해배상의 2배까지 청구 가능한 법령을 운용하고 있다. 특히 1996년에 입법된 '경제스파이법'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업의 사업, 과학, 기술, 공학 정보를 보호대상으로 지정해놓은 상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영업비밀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법 조항이 모호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올해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 대해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대외적으로 보고서 공개를 추진하려고 했던 것도 이처럼 영업비밀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약하기 때문"이라며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 문제에 있어서도 영업비밀 보호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