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경기도 김포에 있는 자동차 부품기업 S사 사무실은 절반이 비어 있었다. 현대·기아차의 2차 협력사로 동탑산업훈장(2003년), 오백만불 수출의 탑(2014년) 등도 탔던 이 회사는 지난 7월 파산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직원은 "사무직과 임원 대부분은 회사를 떠났다"며 "월급을 몇 달째 못 받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부 직원이 남아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 다시 돌리나 - 인천 부평에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 A사의 계기판 생산 라인이 멈춰 서 있다. 이 회사는 군산 공장을 지난 2월 폐쇄한 데 이어 지난 7월엔 부평 공장도 일부 가동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 3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인천 부평과 전북 군산에 자동차 부품 공장을 둔 연 매출 1000억원대의 A사는 한국GM 군산 공장이 지난 2월 폐쇄 수순을 밟자 자사의 군산 공장도 폐쇄했다. 올 상반기 매출은 반 토막 났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900명에 달했던 직원은 30% 감원해 600명 수준이 됐다. A사 대표는 "자동차 제조업만 40년을 했는데, 어려워도 희망이 있을 땐 연구개발 투자를 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통째로 흔들리며 부품업체들이 무너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직접 고용 규모는 39만명으로, 조선업(12만8000명)의 3배에 이른다. 자동차 제조업은 2016~2017년 직접 고용 인원 40만명을 유지해왔다. 1인당 4인 가족을 가정하면 160만명의 생계를 책임져온 셈이다. 그러나 고용 인원은 올 초부터 매달 1000명, 2000명씩 감소하더니 지난 8월 39만1000명까지 내려왔다. 한국GM 위기로 퇴직한 2700여 명 외에도 중소기업에서 그 2배의 실직자가 나왔다는 의미다. 1일 국내 5개 완성차업체가 발표한 9월 실적도 심각하다. 내수는 전년 동월 대비 17.5% 감소한 11만130대, 수출은 6.5% 감소한 56만8320대에 그쳤다.

◇대출은 안 되고, 고용부는 압박

인천 소재 자동차 부품사 ㈜다성의 박재홍 상무는 혼란에 빠져 있다. 지난달 7일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자동차 부품업계 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박 상무는 "한국GM에 의존하는 사업 구조를 바꾸기 위해 멕시코에 공장을 세웠는데, 당장 자금이 모자라 공장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호소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신용보증기금의 특례보증이 남아 있으니, 적절히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며칠 후 찾아간 신보의 얘기는 달랐다. 신보 측은 "다성은 기존 대출이 있는 데다, 차 부품 업종 전반이 어려워 대출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려운 부품업체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부처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GM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부품사에도 "협력사 직원을 직고용하라"며 압박하는 것이다. 지난 8월 경북의 한 중소 부품사에는 대구고용노동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불법 파견' 조사를 벌였다. 노동청은 "본사가 도급업체에 위탁한 제품 품질 관리에 관여하고 있다"며 수십 명을 직고용하라고 명령했다. 이 회사 대표는 "회사가 망할 위기인데 정부마저 회사를 들쑤시니 사업하는 게 '공포'에 가깝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불법 파견 시정 등 정부 정책도 자동차 부품업종 등 위기 업종에는 유예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경남 지역 자동차부품사협회장인 김선오 금성볼트 대표는 "대통령 공약이라고 모두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실제 해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면 국민과 참모들을 설득해 유예나 전환을 하는 등 유연하게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의현 대일특수강 대표는 "인건비가 선진국보다도 비싼 데다 한국의 강성 노조 때문에 인력 뽑기가 겁난다"며 "정부가 현장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실질적인 대책을 논해달라"고 말했다.

◇선제적 구조조정 없으면 조선업 꼴 난다

애초에 하나의 완성차에 납품을 의존하는 종속 구조가 도미노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일본 등 해외 강소 부품사들은 납품처가 다변화돼 있어 위기 때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국내 업체 한두 군데에 의존하는 국내 부품사들은 타격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부품사는 경쟁력을 키워 수출 다변화를 하고 있지만, 대다수 2~3차 부품사들은 자생력이 없다"며 "수출 경쟁력을 키워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수·합병 유도, 연구개발 투자 지원 등 선제적인 산업 구조 개편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조선업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 다 같이 망했다"며 "자동차도 너무 많은 기업이 출혈 경쟁을 하고 있는 만큼 민간에서 자체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미래차에 대비할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