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소주 4세 현재웅 대표 "소주공장을 체험 관광지로 바꾸는 중"

"지난 6월 한라산 소주의 인기에 전 직원이 주말도 못 쉴 정도로 일했는데, 신공장 가동한 후로 한숨 돌렸습니다. 수출과 전국 판매량이 늘고 있지만, 향토기업인만큼 제주도민들에게 받는 사랑도 놓칠 수 없죠."

지난 18일 제주시 한립읍에 자리한 (주)한라산 본사에서 만난 현재웅(41)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새롭게 건설한 공장을 소개했다. 현 대표의 새로운 집무실에서도 신공장 첫 생산품과 단종된 한라산물 순한소주, 한라산, 올래소주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지난 18일 제주시 한립읍에 자리한 (주)한라산 본사에서 현재웅(41) 대표를 만났다.

현 대표가 이끄는 한라산은 1950년 시작해 4대째 이어오는 장수 기업이다. 그는 68년 된 한라산 소주에 젊은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2013년 취임한 그는 각종 제도를 바꾸고, 전국·해외 시장을 사로잡고 있다. 생산 시설을 계속 확대하고 있어 도외 매출, 수출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 향토 소주업체가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주류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한라산 소주는 전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으며 성장하고 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소비자 선호도 지수 분석 결과, 한라산은 지난해 국내 지역 소주 브랜드 중 1위 자리에 올랐다. 참이슬, 처음처럼 다음으로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실제로 2014년 395억원이었던 한라산의 매출액은 지난해 460억원으로 증가하고, 도외 수출량도 2016년 300만병에서 지난해 500만병으로 증가했다. 올해 8월 현재까지 400만병으로, 수출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40대의 젊은 최고경영자(CEO) 현 대표에게 한라산 소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소주업체로는 드물게 4대 가업 승계를 했다. 장수비결은.

"오랜 역사와 기술, 사람 덕이다. 한라산은 장인정신을 키워 전통을 유지하면서 기술력을 키우며 흐름을 맞춰가고 있다. 지역 소주여서 제주도민들과 소통도 하고, 같이 자란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시대가 흘러도 믿을 수 있는 소주를 만들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일하면서 사랑받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각 광역단체별로 1도 1주 정책과 자도주의무구입제 때문에 정책적인 보호가 있었는데 상황이 바뀌면서 제주 지역적특징을 살린 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기업의 본래 이름은 한일소주였는데 제주도만의 특색을 드러내자는 의미에서 선대에서 한라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제주도 소주라는 인식이 박히면서 다른 지역주민들도 제주도를 떠올리면서 한라산소주를 즐기는 것도 장수비결인 것 같다."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어떤 교육을 받았나.

"할아버지인 2대 고 현정국 회장님, 아버지인 3대 현승탁 회장의 영향이 크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 할아버지(현정국 회장)께 직접 한라산이라는 회사와 사업에 대해 들으며 배웠다. 지금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께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가족기업인만큼, 그 외 가족들의 도움도 크다. 아버지가 경영하실 때는 삼촌들이 도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남동생이 서울에서 판매를 총괄하면서 도외 판매를 돕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크게 배운 건 겸손해야 한다는 것과 주변에 피해가 가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영을 하면서도 돈이 되는 것을 다 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피해보는 사람이 없게끔 한다. 예를 들면, ‘한라산물 순한소주’의 이름을 ‘한라산 올래’로 바꿀 때에도 사단법인 제주올레에 연락해 이름을 사용해도 될지 먼저 논의하고 함께 손잡을 방안을 고민했었다."

-대표를 처음 맡은 2013년과 비교해 지금 시장 상황은.

"한라산의 전체 매출은 상승했다. 하지만, 제주도에 다른 소주 회사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한라산의 제주도내 시장점유율은 많이 줄었다. 하이트진로(참이슬), 신세계그룹(제주소주의 푸른밤)의 자본·물량 공세에 한라산의 점유율은 80~90%에서 65%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도외 지역으로 수출이 늘면서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라산이 향토기업인 만큼 매출의 60%는 제주도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나 해외에서 잘나간다고 해서 안방 시장을 놓칠 수 없다. 신공장을 만든 것도 그 이유다. 제주도민에게 한라산소주는 굉장히 친숙하지만, 이 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신공장 증축을 통해 도민들에게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

현재 제주도에는 ‘소주 삼국지 시대’가 열렸다. 국내 최대 유통기업인 이마트(139480)는 지난 2016년 말 제주소주 지분을 전량 인수해 제주 소주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이트진로(000080)도 참이슬 제주 한정판을 출시해가며 제주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제주도 외 지역에서 한라산 소주가 많이 팔리는 비결은.

"소비자들이 한라산을 맛보고 인정해줬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마케팅과 홍보를 강화한다고 해도 제품이 별로라면 인기를 끌 수 없다. 소주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물인데, 한라산 소주는 삼다수처럼 자연수 상태에서 최상의 수질을 유지해 술을 만들고 있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편이다.

최근 들어 제주에 관광객과 이주민이 몰리는 것도 한라산의 인기를 높이고 있는 것 같다. 제주 방문 시 한라산을 접한 소비자들이 돌아가서도 다시 한라산 소주를 찾는 것이다. 제주 흑돼지, 몸국, 고기 국수 등 제주 향토음식이 주목받으면서 도외 지역에 제주 음식점이 늘어나 한라산 소주를 취급하려는 도매상도 늘었다."

한라산은 도외에서 제품 판매 채널도 확대하고 있다. 한라산 올래(400mL)는 지난 3월부터 편의점 CU(씨유)와 GS25시에 입점했다. 한라산 오리지널(360mL)도 9월부터 전국 홈플러스에서 판매된다.

-해외 진출 성과는.

"현재 7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인기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08년부터 중국, 일본 등에 수출을 시작해 지금은 안정화 단계다. 중국은 2008년 첫해 컨테이너 1개 물량 정도를 수출했지만 2012년 23만병, 2014년 40만병으로 늘었다. 올해 7월까지 수출량은 52만병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수출량을 넘어섰다.

-신공장 증축으로 무엇이 바뀌나.

신공장 전경. 앞쪽에는 구(舊)공장의 벽면이 남아 있다. 현 대표는 신공장으로 설비를 추가·보완해 도외 공급물량을 늘리고 공장 투어코스, 기념품 샵 등으로 제주도 여행 관광코스로 자리 잡겠다고 설명했다.

올해 6월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하루 이틀밖에 못 쉴 정도로 전 직원이 생산에 매달렸다. 전국에 상품을 내보내야 하고, 해외 수출량도 늘었기 때문이다. 신공장이 지어진 뒤 조금 더 여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하루에 12~15만병을 생산했는데 지금은 하루에 25만병을 생산하고 있다.

신공장은 제주도민과 상생할 수 있고, 젊은 세대를 겨냥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만들고 있다. 요즘에는 관광객들이 렌터카를 몰고 SNS(소셜미디어) 명소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점에 착안했다. 옥상에는 포토스팟을 준비하고, 공장 벽면 일부는 부수지 않고 지역 명물로 만들 계획이다. 올해 11월 투어코스가 완성되면, 한림읍의 경제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기념품샵에는 제주지역 자영업자들이 만드는 양초 같은 기념품도 넣어 이들과 상생할 예정이다."

-회사가 젊어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대표를 맡고 나서 시도한 일이 있나.

"12년 전 입사했을 때 모든 부서에 베테랑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들이 퇴직하게 되면 남은 게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평가시스템 등 인사제도를 세워 기업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처음으로 제주 외지에서 인력을 뽑으며 인재를 늘렸다. 영업직원들의 본거지를 시외에서 시내로 옮겨 매출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제주도민의 사랑으로 성장해온 만큼, 기존에 진행하던 사회공헌활동(CSR)도 체계화했다.

소비자가 주류를 기호품처럼 선택하는 시대가 되면서 제조업 마인드를 바꿨다. 다른 경쟁사와의 차별성을 위해 부속연구소도 만들었다. 연구를 통해 제주도에 있는 조릿대(대나무과의 키작은 식물)를 소주에 적용하기도 했다. 해발 600m에서 자생하는 조릿대를 숯으로 가공해 정제하는 공법을 사용해 기능성을 더했다. 소주를 여과시켜 성인병을 예방하는 식이다."

-한라산만의 색깔을 지키기 위한 전략은.

"한라산만의 색깔을 지키기 위해 투명병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 환경부의 공병 공용화 정책도 끝까지 설득해 한라산소주의 자존심을 지켜낸 셈이다. 한라산 소주의 목이 짧고 뚱뚱한 병모양은 고전적인 느낌을 주지만 싫증이 나지 않는다.

한라산소주의 투명한 병은 소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각종 SNS(소셜미디어)에는 한라산소주를 찍은 인증사진이 올라온다.

한라산소주의 재료도 자랑거리이자 꼭 지켜야 할 경쟁력이다. 한라산은 제주산 밭벼와 보리, 제주산 물을 사용한다. 해저 80M의 화산 암반층에서 뽑아 올린 천연 암반수를 쓰기 때문에 품질에 자신있다. 마케팅, 홍보에 힘쓰기보다는 꾸준히 질 좋은 상품을 내놓으려고 한다."

-사업상 어려운 점은.

"제주도가 섬이다 보니 물류비가 비싼 편이다. 대기업은 최소 발주 수량이 많으니까 이를 상쇄할 수 있는데, 우리는 수출량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물류비도 비싼 편이라서 가격경쟁력이 약하다. 사실 제주에 있는 기업들 대부분이 그렇다. 중국이나 미국에 수출하려면 부산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물류비가 더 드는 편이다. 물류비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들까지 제주도 소주 시장에 진출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출을 통해 성장을 하고, 브랜드가치를 알리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붓기도 모자란데 내부경쟁에도 힘을 쏟아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쟁력 있는 제품과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대기업과의 자본싸움에서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많이 받을 것 같다. 매각을 고려해 본 적이 있나.

"한라산을 인수하고 싶다는 연락을 많이 받는 편이다. 편하게 살려면 투자를 받고 상장을 한 뒤 빠져나왔겠지만 그럴 수 없다. 4대가 이어온 만큼 사명감을 갖고 경영하고 있다. 내 연봉을 깎고, 수익 나는 것도 재투자하면서 직원들과 회사를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68년 됐는데, 100년도 더 가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미래 목표는.

"신공장을 만들며 생산량이 늘었으니까 제주도뿐만 아니라 도외 지역, 해외 수출량을 늘려서 제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나아가고 싶다. 제주도의 좋은 이미지를 전국 방방곡곡 알리고, 3대가 모두 즐기는 소주가 되고 싶다. 규모만 키워서 대기업이 되고 싶지는 않다. 양으로 밀어붙여 성공하는 것보다는 스페셜하고 매력있는 회사가 되고 싶다.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면 일반 소주와 다른 게 없어질 것 같다. 한라산만의 특별함을 지켜가겠다."

☞현재웅
-1977년생
-제주 대기고, 한림대 경영학과, 제주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2005년 (주)한라산 이사, 2013년 (주)한라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