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국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참여한 163억달러(약 18조1745억원) 규모의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APT·Advanced Pilot Training) 교체 사업 수주전에서 탈락했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 공군은 보잉과 사브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92억달러(약 10조2000억원)의 계약을 승인했다.

미 공군 홈페이지에 공지된 차기 고등훈련기 내용.

APT 사업은 미 공군의 노후화된 훈련기 350대를 교체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방산업계는 APT 사업 입찰 규모가 163억달러지만, 이번 수주 결과가 미 해군의 차기 훈련기 사업, 다른 국가들의 고등훈련기 혹은 경량전투기 도입에도 영향을 미쳐 파생 효과는 그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기대해왔다. 훈련기 수출은 관련 훈련시스템과 정비사업 수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KAI 측은 "최저가 낙찰자 선정방식에 따라 보잉이 선정됐다"며 "록히드마틴사는 KAI와 협력해 전략적인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했지만, 보잉사의 저가 입찰에 따른 현격한 가격차이로 탈락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사업자로 선정되지 않은 것은 안타깝지만 현재 전투기사업(KFX), 소형무장헬기(LAH), 정찰위성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미래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지속성장에는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각 컨소시엄은 지난 8월16일 최종 제안서(BAFO)를 제출했다. KAI는 이번 수주전에서 T-50A를 내세워 미국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다. 주계약자는 록히드마틴이다. 보잉·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은 BTX-1을,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미 레오나르도는 T-100을 내세워 입찰에 참여했다. 업계에서는 KAI·록히드마틴과 보잉·스웨덴 사브의 양강 구도로 봤다.

KAI 본사 항공기동에서 작업자들이 T-50을 점검하는 모습

APT 사업자 선정의 핵심 결정 요소는 미국 공군 요구도(ROC) 충족 여부, 높은 비행안정성과 운영효율성, 합리적인 단가였다. 이중에서 핵심은 가격으로 꼽힌다. KAI는 이미 100여 대 이상의 T-50 제작 경험을 갖추고 있는 것이 강점이었으며 보잉·사브는 BTX-1 모델을 공동 개발해 2016년 12월 초도 시험비행을 마쳤다. 레오나르도는 M-346 모델을 개량한 T-100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KAI는 APT사업 입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검찰 수사 등을 받으며 홍역을 앓았다. 검찰 수사는 대규모 매출조작과 납품원가 부풀리기 등의 경영비리 의혹으로 확장됐고 KAI는 방산 비리 집단으로 내몰렸다. 하성용 전 KAI 사장은 작년 10월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쟁사가 KAI의 방산 비리 의혹을 활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산비리 수사가 자칫 ATP 사업 등 KAI의 해외사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7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 KAI 전시관을 찾아 관심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T-50A 시뮬레이터를 타고 이·착륙을 체험하고, 정성섭 당시 KAI 사장 직무대행에 "열심히 해서 (사업을) 꼭 성공시켜 달라"는 격려와 당부를 하기도 했다.

정부가 하성용 사장 후임으로 항공, 방산 관련 경험이 없는 김조원 사장을 선임한 것도 KAI의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꼽힌다. 김 사장은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으로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다. 당시 KAI 안팎에선 대규모 해외 사업인 ATP 입찰을 앞둔 상황에서 비전문가를 사장으로 선임하는 것은 사업 수주에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KAI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만든 회사와 15만달러(약 1억7000만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KAI는 원가 회계표준에 관련한 법률자문을 받기 위해 맺은 정당한 계약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KAI가 코언 회사와의 계약을 한 것과 APT 입찰에 참여한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