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분야 대한민국명장인 박춘화 연화우리옷 대표가 전통한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명절이나 입었던 한복을 입는 이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중장년층 중에는 개량 한복을 평상복으로 입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복궁 등 서울의 고궁이나 멀리 전주 한옥마을 같은 곳에서는 화사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불편하게만 여겨지던 한복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고궁 주변의 대여소에서 빌려 입는 한복은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과 멋을 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만들어져 한복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양식 스커트 형태의 치마와 블라우스 형태의 저고리 등 근본을 알 수 없는 옷이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한복의 아름다움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 패션이 대세라는 시류 덕분에 한복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사라진다는 걱정도 있지만 여전히 한복이라는 외길을 걷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선비즈는 19일 서울 자양동에서 한복 전문점 ‘연화우리옷’을 운영하는 박춘화 대한민국명장(한복·62)을 만나 명장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대한민국명장은 산업 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 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말한다. 고용노동부는 22개 분야 96개 직종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자를 대상으로 대한민국명장을 선정한다.

-명장이 운영하는 한복집치고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한복은 입을 사람의 치수를 재서 만드는 수제여서 기성복을 파는 매장처럼 많은 옷을 진열할 필요가 없다. 또 입어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듣고 오는 손님이 많아 화려하게 꾸밀 필요도 없어 눈요기로 몇몇 작품만 진열해 놓았다. 이곳에는 손님도 오지만 친구도 만나고 제자들도 만나는 사랑방 개념이다."

-어떻게 한복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한복과 밀접한 환경에서 자랐다. 고향이 경북 김천인데 김천과 상주는 비단으로 유명하다. 아버지는 비단을 염색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을 했다. 손재주가 좋았던 어머니와 큰 언니는 알음알음 주문을 받아 아버지가 염색한 비단으로 한복을 만들어 파셨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언니 곁에서 비단천이며, 골무, 실패 등을 가지고 소꿉장난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한복을 만드는 기술을 시나브로 배우게 됐다. 결혼해서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주문이 들어오면 한복을 만드는 부업을 했다. 입소문이 나서 손님이 많아졌다. 복식(服飾·패션)과 관련된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관련 석사까지 공부했다."

-손재주를 타고 난 것 같다. 힘들다고 어머니가 말리지는 않았는지.

"멋진 한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재주가 있어야 한다.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손재주에 따라 옷의 품격이 달라진다. 같은 옷감을 사용해도 재단이며, 바느질 솜씨에 따라 옷 맵시가 살고 죽는다. 그런면에서 보면 어머니 손재주가 대물림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술이든 있으면 살림에 도움이 됐던 어려웠던 시절이었던 만큼 어머니도 내가 한복 만드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 ‘밥은 굶어도 옷은 반듯하게 입어야 밖에 나가서 앉을 자리라도 생긴다’며 옷의 중요함에 대해 자주 언급하셨다.

결혼해서 한복을 만들어 보니 그닥 힘들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도 많이 됐다. 부업으로 생긴 돈으로 아이들 키우고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든지 올해로 35년이나 됐다."

-자녀들도 같은 일에 종사하나.

"아들 하나에 딸이 둘이다. 둘째 딸이 손재주는 있는데 한복에 별 관심이 없더라.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결국 딸 둘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대신 외부에서 제자를 키운다. 서울공고와 서울디지인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복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한복 배움에 아주 열성적이다. "
-고등학생들이 한복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니 의외다.

"한류가 세계에서 주목받으면서 한복으로 세계 패션시장에서 우뚝 서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서울공고의 경우 패션학과가 있는데 유독 한복에만 아이들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서울디자인고등학교에서는 방과 후 수업으로 명장공방을 운영하는데 정원이 초과될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이 크다."

-주로 어떤 한복을 만드나.

"옷을 따로 가리지 않고 만든다. 한복이 지금은 명절에나 입는 옷이 됐지만 옛날에는 직업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입던 일상복이었다. 궁중에서 입던 한복부터 스님들이 입는 승복, 그리고 일상복과 작업복, 수의까지 다 만든다. 형태와 디자인만 알면 재단하고 바느질해서 만드는 일이어서 어렵지 않다. 다만 옷에 따라 만드는 걸리는 시간 차이가 크다. 최근에는 한복이 가진 전통의 멋은 살리면서 젊은 층이 선호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한복을 만드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혼자서 일하는지. 직원은 없는지.

"굳이 사람을 쓸 필요가 없다. 우리 가게는 허름하지만 입소문을 듣고 오는 손님이 대다수여서 순서대로 옷을 만들면 된다. 대신 항상 주문이 밀려 있기는 하다. 그래도 간혹 궁중수의처럼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는 제자들과 일을 나눠 옷을 만든다. A는 치마를 만들고, B는 저고리를, C는 속바지를 만드는 식이다."

-명장이 만든 옷인 만큼 비쌀 것 같다. 만든 옷 중 가장 비싼 제품과 가장 싼 옷은.

"기성품의 경우 같은 제품 모델은 사이즈와 관계없이 가격이 동일하지만 한복은 옷감은 물론 치수에 따라서도 가격 차이가 크다. 최고급 비단을 사용해 키와 덩치가 큰 사람의 옷을 만들면 비용이 더 든다. 가장 비싼 것은 어느 재벌가 자녀의 혼례복으로 만든 한복인데 4000만원쯤 받은 것 같다. 생활한복은 옷감에 따라 다르지만 30만원 안팎인 것도 있다."

- 손재주가 있으면 한복 기술을 배우면 좋다고 했는데.

"결혼하고 부업으로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겨 좋았다.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 나이 먹어서도 일을 하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그동안 만든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한복은.

"한복을 만들 때 항상 공을 들인다. 그래서 그동안 만든 모든 한복에 애착이 간다. 그래도 엄마라서 그런지 큰 딸이 시집갈 때 사위랑 딸이 입을 한복을 만들었을 때가 가장 뿌듯하더라."

-각종 자료 모아 ‘한복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복은 ‘옷본’을 근거로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제대로 된 책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의도치 않은 모양의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복 제작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구해 전통 한복 제작 ‘매뉴얼’을 만들었다. 의상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책을 주로 본다. 다른 강사들이 강의할 때 자료로도 쓰는 것 같다."

-한복 분야의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됐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명장 선정 이후 우리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이를 전승 발전 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을 비롯한 후진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고교에서 강의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 광진구 광진문화원에서 ‘전통한복반’ 강사와 산업현장교수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한복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모두 전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한복 만드는 법을 전문적으로 전수하는 교육기관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