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과 민간 기관에서 우리 경제가 경기 순환 사이클상 하강 직전에 도달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14일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입장을 이어갔다.

정부가 경기 회복세를 고집한 배경엔 수출과 소비가 있다. 지난 7월 설비투자가 IMF(국제통화기금) 직후 수준으로 최장(最長) 기간 감소하고, 8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3000명까지 추락했지만 수출과 소비가 버텨주고 있다는 판단이다. 8월 수출은 전년 대비 8.7% 양호하게 증가했으며, 중국인 관광객 수 회복과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으로 소매 판매액 지수도 6~7월 두 달 연속 상승세를 지속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경기 회복세의 한 축인 소비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한 달 평균 50만~60만명을 나타냈던 과거의 추세를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연말 개소세 인하가 끝나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 하강 국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 정부 "투자·고용 상황 좋지 않지만 수출 견조하고 소비 양호"

기획재정부는 이날 매달 경기 동향을 평가하는 ‘9월 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소비 중심의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투자가 조정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미중(美中) 무역 갈등 심화 등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달에는 "최근 우리 경제가 수출 중심의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생산과 투자가 조정을 받는 가운데 미중 무역 갈등 심화 등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경기 회복세 판단을 이어가면서 긍정적인 요인에 ‘소비’를 추가했고, 부정적인 요인에서 ‘생산’을 제외한 것이다.

조선비즈가 지난 8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금융회사와 경제연구기관, 대학 등에 소속된 경제전문가 19명 중 14명(74%)이 한국 경제의 상황을 ‘경기하강 국면 진입이 임박했거나, 이미 진입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아직 수출·소비가 경기를 떠받쳐 주고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실제로 반도체는 고점 논란에 휩싸였지만 여전히 수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8월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8.7% 증가했다. 반도체(31.5%)는 물론 석유 제품(46.3%), 철강 제품(20.7 %) 등의 수출이 양호했다. 소비를 보여주는 소매 판매액 지수도 4~5월 2개월 연속 하락한 뒤 6월 반등해 7월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7월 소매판매는 화장품 등 비내구재(0.5%), 의복 등 준내구재(0.5%), 승용차 등 내구재(0.1%) 모두 증가했다.

수출과 소비에 대해선 국책 연구기관의 진단도 비슷하다. KDI(한국개발연구원)도 지난 11일 ‘경제 동향 9월호’에서 수출과 소비가 그나마 버팀목이 돼주면서 경기 급락을 막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체 경기 판단은 달랐다. KDI는 보고서에 ‘경기 하락’이라는 문구를 처음 추가하면서 경기 순환 사이클상 한국 경제가 하락 직전인 정점이 임박했거나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을 내놨다. 경기 회복세를 자신하고 있는 정부보다 경기 하락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인 것이다.

최근 수출·소비를 제외한 생산·투자·고용 지표는 참사 수준이다. 고용 및 경제 활력과 직결되는 설비 투자는 지난 7월 전월 대비 0.6% 감소하면서 5개월 연속 뒷걸음질 쳤다. 설비 투자 감소세가 이처럼 오랜 기간 지속된 것은 IMF 외환위기 전후인 1997년 9월~1998년 6월 이후 처음이다. 고용 시장은 더 심각하다. 취업자 수 증가폭은 지난 2월 이후 줄곧 10만명대 이하에 그친 후 7월엔 5000명, 8월엔 3000명까지 고꾸라졌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도 최근 우리 경제의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OECD에 따르면 7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Composite Leading Indicator)는 99.17로 전월 대비 0.19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2012년 11월 이후 5년 8개월 만에 최저치다. 한국의 CLI는 지난해 3월(101.00) 이후 1년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떨어진 것은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9월~2001년 4월 20개월 연속 하락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이날 보고서에서 최악으로 치닫는 고용 상황에 대해서도 "고용 상황이 미흡하다"고만 언급했다. KDI가 보고서에서 취업자 수 급락에 대해 "인구 구조 변화, 경기 상황만으로는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적 요인을 에둘러 표현한 것과 상반된 것이다.

◇ 자동차 개소세 인하와 유커 회복으로 소비 증가세…"개소세發 반짝 소비 견인 불안"

정부가 경기 회복세의 한 축으로 지목한 소비는 현재 괜찮지만 향후 개선 추세가 불안한 모습이다.

지난 7월부터 실시한 자동차 개소세 인하는 다행히 시장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8월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는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 전달(3.3%)에 비해 증가율이 두 배 늘어난 모습이다.

중국인 관광객 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갈등 이전의 추세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유커가 다시 증가하면서 소비 진작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3월부터 한달 평균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40만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8월엔 50만명대까지 올라갔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예전 추세는 완벽히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드 이전에 중국인 관광객 수는 한 달 평균 50만~60만명에 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비거주자(외국인)의 국내 소비지출은 3조3272억원(계절 조정, 실질 기준)으로, 전분기보다 11.3% 증가했지만, 여전히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가 시행되기 전인 2016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6년 외국인 소비지출은 1분기 4조553억원, 2분기 4조1883억원, 3분기 3조4341억원, 4분기 4조189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올해말 종료되는 개소세 인하의 ‘반짝 소비 견인’도 한계가 있다. 투자 부진과 취업자 수 급락 같은 고용 상황 악화가 계속되면 소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내수가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등 소득 증진을 위한 정책으로 버티고 있는데, 고용 악화와 소비 심리 악화 등이 소비 지표를 끌어내리는 모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빠른 경기 급락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8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로 전달보다 1.8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 밑으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 3월(96.3) 이후 1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