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저승사자'로 통하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또 한 번 세계 반도체 주가에 찬물을 끼얹었다. 6일(현지 시각)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D램을 비롯한 반도체 수요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날 미국의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 KLA-텐코의 최고재무관리자(CFO)가 뉴욕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적다"고 발언하면서 반도체 경기 고점 논란은 한층 증폭됐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국 대표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주가는 9.87%나 폭락했다. 이튿날인 7일 한국 증시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2.6%, 3.68% 하락했다. 외국인들이 두 회사를 포함한 기술주(株)를 대거 처분하면서 외국인 순매도 규모(7733억원)는 5년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산업의 수퍼 사이클(초호황)이 정점(頂點)을 찍고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끊임없이 불거지며 국내 반도체 업계와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면 '초호황'이 '호황'이 될 뿐 현재의 비관론은 과도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메모리 수요 악화… 3분기부터 영향"

모건스탠리의 숀 킴 애널리스트는 6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메모리 시장이 최근 몇 주 새 악화되고 있다"면서 "D램의 수요가 줄면서 재고와 가격 압박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낸드플래시 역시 공급이 너무 많아 3분기부터 실적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반도체의 3대 수요처인 PC와 스마트폰,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최근 2주간 줄었고 당장 3분기(7~9월)부터는 반도체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투자은행 중 반도체 산업을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곳이다. 작년 11월에는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곧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보고서로 한국 증시를 발칵 뒤집어놨고, 지난달에도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 전망을 '주의' 단계로 하향 조정했다.

D램 반도체 가격은 수개월째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글로벌 IT(정보기술) 업체들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건설붐이 일면서 가격이 치솟다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D램 고정 거래 가격은 8월 말 현재 개당(DDR4 8Gb 기준) 8.19달러로 지난 4월 이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공급 과잉으로 하락세다.

반도체 시장 조사 기관 D램익스체인지도 지난달 보고서에서 '내년 D램 가격은 올해보다 15~25%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공장을 잇따라 증설(增設)하면서 공급 부족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 1위인 삼성전자는 기존의 기흥·화성 공장에 이어 평택에도 생산 시설을 늘리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내년에 중국 우시의 D램 신공장이 완공되는 대로 본격적인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도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생산량 증가에 따른 여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초호황이 호황 될 뿐… 우려 과도"

국내 반도체 업계와 증권사들도 5년째 지속되어온 반도체 초호황 국면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다만 반도체 경기가 확 꺾이기보다는 천천히 내려갈 것이고, 가격이 떨어져도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 반도체 기업 실적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최근의 숨 고르기 과정이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된 측면이 있다"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을 만든 수요와 공급의 구조는 여전히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미국의 FAANG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중국의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이 지속되고 있고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 분야의 수요도 계속 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산업이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재고 증가에 대해서도 삼성전자 측은 "공급 부족으로 재고가 워낙 적었던 것이 적정 수준을 찾아가는 것"이라며 "최근 공장 증설로 생산량이 늘면서 원자재와 완제품의 재고가 늘어난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반도체 업체와는 여전히 기술 격차가 크다고 본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부상은 하위 기업에 타격을 주겠지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