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로 밀어내기
2015년 할인 대란에 중고차값이 신차보다 비싸기도

사례1) 아우디가 판매 재개를 한 지난 3월. 아우디는 국내에서 A6 모델에 대해 1300만원씩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아우디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다소 의아하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아무리 시장점유율을 예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더라도 손해나는 장사를 하는 것은 좀 의아하다는 것이다.

사례2) 폴크스바겐도 2월 파사트GT를 출시하며 1000만원씩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 현대차 그랜저를 살 돈이면 파사트를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우는 독일차업체들이 올 들어 대규모 할인 판매를 진행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재고 밀어내기의 하나로 보고 있다.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가 적용되면서 올해가 지나면 일부 디젤차들의 판매가 불가능해 할인 판매를 통해 재고를 떨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 새 배출가스 규제 ‘WLTP’ 적용, 디젤차 매력 급감

이달 1일부터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인 국제표준시험방법(WLTP)이 국내 모든 중·소형 디젤차에 적용됐다. 지난해 9월부터 새로 인증받는 디젤차에는 이미 해당 규제가 적용된 상태다. 기존에 인증받은 차는 오는 11월30일까지만 판매가 가능하다.

조선일보DB

따라서 각 회사에 남아있는 디젤차 재고를 11월말까지 소진하지 않으면 이후부터는 판매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WLTP가 적용되면 디젤차 매력도 떨어지게 된다. WLTP는 실제 도로주행 조건에 가장 가까운 배출가스 및 연비 측정제도다. 기존 방식보다 시험주행 시간과 거리, 감속·가속 상황이 늘어나게 된다. 주행 상황이 악화되면서도 시험 차량의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기존과 같은 기준인 '0.08g/㎞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새 규제에 맞춰 자동차업체들은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희박질소촉매장치(LNT) 등 기존의 배기가스 저감장치 외에 요소수로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를 추가하고 있다. 결국 배출가스를 줄이는데 들어간 '후처리 장치'만큼 오히려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SCR 장착에 따라 차량 가격이 300만원가량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격은 오르는데 연료 효율은 떨어진다. 유럽에서는 WLTP가 적용되고 나서, 디젤차의 연료 효율이 10~15%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엔진에다가 배출가스 저감장치만 추가하다 보니, 연료 효율만 떨어지는 셈이다.

현재 디젤차는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판매량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디젤차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유럽자동차협회(ACEA)에 따르면 유럽 주요 15개국의 디젤차 점유율은 2011년 56.1%였으나 매년 줄어 지난해 45.7%까지 떨어졌다.

◇ 유로6 도입 때도 할인 대란, 이번에도?

독일차업체들은 여전히 디젤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한국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일본에나 중국, 미국에서는 승용차 시장에서 디젤차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올가을 본격적으로 독일차업체들이 대대적인 할인 판매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15년 ‘유로6’ 도입 당시에도 독일차업체들은 대대적인 출혈경쟁을 벌인바 있다. 당시 주행거리가 얼마 안 된 중고차 가격보다, 할인을 받은 신차 가격이 더 내려가는 기현상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독일 자동차 기업 로고.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BMW,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아우디

실제 BMW는 일부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차 값을 17~20%씩 할인해 판매했으며, 폴크스바겐도 차량에 따라 무이자할부 또는 저금리유예 할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수입차 할인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독일차업체 중 메르세데스-벤츠만 유일하게 미리부터 유로 6모델을 판매해 할인을 크게 하지 않았다.

수입차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WLTP 인증 차량이 배출가스 감소를 위한 장치가 추가될 뿐 기능적인 장점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가격은 오르고 성능은 떨어지면, 국내에서도 비정상적인 디젤차 인기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2015년과 다른 것은 올해 상반기 독일차 인기가 워낙에 좋아, 재고로 밀어낼 만한 차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독일차 업계 한 관계자는 "올 상반기 독일차 브랜드들이 예년을 웃도는 수준으로 판매량이 급증해 재고가 거의 소진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2015년과 같은 할인 대란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