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내년 3월 목표로 내세운 '세계 최초'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 시점이 다가오지만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상용화 목표를 맞추려면 10월부터는 통신망 구축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만 중국 화웨이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이 제때 장비를 공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상용화 이후 5G를 기반으로 선보일 만한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핵심 콘텐츠)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고민거리다. 당장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도 보안 논란이 거센 화웨이 장비를 쓸 수밖에 없고, 10조원 넘는 투자금을 쏟아 부어도 투자금을 회수할 길이 막막한 상황이다.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5G 전국망을 구축하는 데에만 통신 3사가 10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며 "당장 매출이 일어나지도 않을 사업에 큰돈을 쏟아부어야 하니 답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최초 경쟁할수록 화웨이만 유리

현재 통신 3사는 지난 6월부터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인 삼성전자노키아(핀란드)·에릭슨(스웨덴)·화웨이를 상대로 5G 장비 선정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일단 통신 3사는 늦어도 이달 말까지 선정을 마친다는 방침이지만 고민은 점점 커지고 있다. 통신 업체의 한 임원은 "화웨이 보안 논란 때문에 다른 업체들의 장비가 기술력이나 가격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최대한 기다리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하지만 선정을 이달 내 하더라도 솔직히 화웨이 말고는 제대로 장비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노키아·에릭슨 등이 잇따라 5G 장비를 시연해 보이고 있지만 통신 3사가 원하는 품질이나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곳은 아직 화웨이 정도라는 것이 통신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통신 업체 임원은 "화웨이 장비에 대한 부정적 국민 여론 때문에 선뜻 화웨이를 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섣불리 망 구축에 나섰다가 돈은 돈대로 쓰고도 기대하는 통신 품질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G는 주파수의 도달 거리가 짧은 특성 때문에 LTE(4세대 이동통신) 때보다 기지국을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하는데, 상용화 일정에 쫓기다 보면 망 구축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확실한 킬러 서비스가 없다"

5G 시대를 이끌 만한 대표 서비스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5G망은 기존 LTE보다 최대 20~100배가량 전송 속도가 빠르지만 이를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내놓을 만한 서비스가 없다는 것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영상과 게임 콘텐츠는 현재 LTE망에서도 사용자들이 즐기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며 "소비자들에게 전송 속도가 빠르다는 것 외에 다른 부가가치를 제공해야 하지만 차별화 포인트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5G 시대의 대표 서비스로 꼽히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미국 자동차 기업 GM과 인터넷 기업 구글 등이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실제 상용화는 더 늦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衆論)이다.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는 "자율주행차나 스마트 공장이 5G 수익원으로 부상하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전 세계에서 2020년을 전후로 상용화되는 5G와 최소 5년 넘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오히려 한국 바라보는 5G 경쟁국들

해외 기업들도 외부적으로는 5G 서비스를 앞당기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속사정은 한국과 마찬가지다. 중국·일본 통신 업체들은 5G 상용화 시점을 아예 한국보다 1년 늦은 2020년으로 잡았다. 한국 기업들이 어떤 시행착오를 겪는지 보고 본격적인 상용화 작업에 착수하겠다는 의미다.

통신 업체 고위 임원은 "중국·일본 통신 업체들은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하려고 한다"며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대표 통신 업체 NTT도코모의 요시자와 가즈히로 사장은 "KT가 5G를 올림픽에 적용한 사례를 바탕으로 NTT도코모도 2020 도쿄 올림픽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최대 통신 업체인 버라이즌도 오는 11월 자국 내 주요 대도시에서 5G 상용화 계획을 밝혔지만 실제로는 집이나 사무실에서만 쓸 수 있는 고정형 5G 서비스다. 와이파이(근거리 무선 인터넷)처럼 이동성이 없는 반쪽짜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세계 최초 타이틀도 중요하지만 VR·AR(증강현실)·자율주행차·드론 등 5G의 핵심 서비스를 어떻게 확보하고 제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