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동안 중국에서 입은 손실만 500억원
부산 공장에 로봇 투입해 자동 생산 시스템 구축
OEM 업체에서 브랜드 제작사로 변신

"부산 신발맨이 돌아왔다."

권동칠(63) 트렉스타 대표를 두고 국내 신발 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권 대표는 1988년 부산에 신발 회사 동호실업(현 트렉스타)을 설립했고, 연 매출 1000억원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95년에는 인건비 문제로 부산을 떠나 중국 톈진(天津)에 공장을 세웠다. 트렉스타는 중국 진출 초기에는 성과를 냈지만, 2000년 중후반부터 중국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권 대표는 지난해 중국 공장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2년 동안 중국에서 입은 손실만 500억원이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는 “한국 공장에 자동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체 브랜드를 강화해 제2의 도약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렉스타가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중국·베트남·미얀마에 있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에 제품 생산을 맡기고 있다. 한국 공장에선 일부 고급 등산화와 전투화만 생산한다. 아직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한국에서 모든 제품을 생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 트렉스타는 한국 공장에 로봇 6대를 투입한 자동 생산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권 대표는 "10월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며 "로봇을 활용한 자동 생산 시스템을 확대해 중국·베트남·미얀마 물량을 한국으로 가져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8월 30일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 내에 있는 트렉스타 본사에서 권동칠 대표를 만났다.

- 1995년 중국에 진출했다.

"회사를 경영한지 7년이 지나자, 비즈니스 규모가 커졌고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인력 수급이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오르는 인건비도 문제였다.

1994년 당시 부산 공장 근로자 수가 800명이었는데 1인당 월급이 140만원이었다. 반면 중국 근로자의 월급은 80달러(약 8만9000원)였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중국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중국 공장 이전 후 수출은 9000만달러(약 1000억원·1994년 부산 공장 기준)에서 1억5000만달러(약 1600억원)로 증가했다. 중국 공장에선 3000명의 근로자가 일했다."

- 중국 공장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한국에서 쌓은 기술과 노하우가 있었다. 특히 생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당시 트렉스타는 OEM 업체였고, 생산한 제품 대부분은 해외로 수출했다. 우리가 생산하면 유통, 마케팅, 판매는 고객인 해외 브랜드사가 알아서 했다.

중국 근로자도 열심히 일했다. 그들은 일이 많을수록 좋아했다. 그래야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인 나도 신이 나서 일했다. 해외 바이어도 늘렸고 물량도 계속해서 증가했다."

- 그런데 왜 중국에서 철수했나.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2008년부터 시행된 신노동법을 계기로 임금이 급격히 올랐다. 2016년에는 1인당 월급이 900달러(약 100만원)까지 치솟았다. 중국 정부의 세제 감면 혜택도 줄기 시작했다. 비용 부담이 커졌고, 더 이상 중국 공장을 가동하는 게 힘들다고 판단했다."

트렉스타의 부산 신발 공장 생산 라인(사진 왼쪽). 트렉스타는 로봇 6대를 투입해 자동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 50여명이 생산하던 하루 1500~2000켤레를 10명의 근로자가 감당할 수 있다.

- 한국으로 생산 공장을 이전한 것인가.

"맞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모든 신발을 생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전히 인건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근로자의 월급은 165만~220만원이다. 과거 중국 공장에서 3000명이 하는 작업을 한국에서 다 할 수는 없다. 신발 공장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 만큼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도 없다.

중국·베트남·미얀마에 있는 OEM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한국에선 일부 고급 등산화와 전투화만 생산한다. 특히 한국 군 등에 공급하는 전투화는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규제가 있다."

트렉스타의 신발 제품은 등산화(워킹화 포함)와 군·관공서에 납품하는 전투화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지난해 기준 매출 비율을 보면 전투화가 60%, 등산화가 40%다.

-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아직은 그렇다. 하지만 로봇을 투입해 생산라인을 자동화하고, 한국 공장의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현재 로봇 6대를 투입한 자동화 생산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장비 설치는 완료됐고, 시스템 테스트를 하고 있다. 10월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 50여명이 생산하던 하루 1500~2000켤레를 10명의 근로자가 감당할 수 있다.

현재 한국 공장에서 연간 50만 켤레를 생산하고 있고, 중국·베트남·미얀마에 있는 OEM 업체에 100만 켤레 생산을 맡기고 있다. 로봇을 활용한 자동 생산 시스템을 확대해 중국·베트남·미얀마 물량을 한국으로 가져올 계획이다."

- 회사명과 같은 ‘트렉스타’라는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 공장을 가동할 때 제품 대부분을 OEM 방식으로 수출했다. 당시 수출이 98%가 넘었다. 하지만 우리 브랜드는 없었다. 바이어는 언제든 우리를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바이어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OEM 업체를 찾으면 매몰차게 거래를 끊는다. 실제로 나이키 등 브랜드사에 제품을 공급하다가 하루아침에 공장 문을 닫은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더 이상 바이어에 따라 사업이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997년 자체 브랜드 ‘트렉스타’를 선보였고, 차츰 OEM 비중을 줄여 나갔다. 현재는 OEM 비중이 전체 매출의 5%에 불과하다."

- 브랜드를 강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우리는 제품을 개발하고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할 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절대로 타사 제품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시장에 선보였다. 1994년 가죽이 아닌 소재를 사용한 경등산화(가벼운 산행이나 단거리 트레킹에 적합한 신발)를, 2005년에는 신발 끈을 와이어로 대체해 다이얼을 풀고 조이면서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코브라(KOBRA) 제품을 출시했다. 2010년 2만명의 발 데이터를 연구해 사람의 발에 최적화된 신발을 만드는 네스핏(NESTFIT) 기술도 개발했다.

현재는 고객이 하루하루 신발의 색깔과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신발, 여름에 보다 더 시원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개발 중이다. 이런 R&D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트렉스타는 없었을 것이다."

트렉스타의 주요 제품들.

- 한국의 신발 산업은 디자인과 브랜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 신발 업체 대부분은 신발 디자인을 할 때 해외 유명 제품을 모방한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독창적인, 자기만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신발 산업 전시회를 가면 한국 사람들은 제품 사진을 찍기 바쁘다. 제품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한국 신발 디자이너, 개발자를 디자이너가 아닌 사진사라고 비아냥거린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꾸준한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 상황을 제대로 봐야 한다. 국내 대부분의 신발 업체는 자금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돈이 없는데 나이키, 아디다스처럼 마케팅·광고를 할 수는 없다. 그들과 똑같은 브랜드 전략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렉스타의 경우 기술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지난해 2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중국 공장 철수와 관련이 있나.

"중국 공장을 정리하면서 발생한 손실이다. 중국 진출 초기에는 많은 이익을 냈다. 하지만 2000년 중후반부터 지난해까지 적자를 냈고, 초기에 벌었던 돈 대부분을 날렸다. 중국 공장을 운영하면서 총 5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

- 매출도 2015년 1038억원에서 지난해 631억원으로 2년 동안 39% 줄었다.

"OEM 사업을 하다가 자체 브랜드로 전환하면서 실적이 줄었다. 중국 공장 철수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16년과 지난해가 안 좋았다. 새롭게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부터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전체 매출의 15%가 발생하는데, 해외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핀란드 등 북유럽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고, 최근 독일 시장에도 진출했다. 국내에선 군, 관공서 추가 공급 계약을 했다. 매출을 다시 1000억원대로 끌어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