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르면 9월 말부터 전세 보증 상품을 이용할 때 소득 및 주택 보유 여부를 따지는 등 요건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고소득자와 다주택자의 전세 보증 상품 이용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전세 보증이 원래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것인 만큼 요건을 강화해 전세 보증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고 취약 계층 지원을 더 늘리겠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고소득자의 전세 보증 이용을 제한하면 연간 약 1조8000억원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 "전세 보증 본래 취지는 취약 계층 위한 것"

기본적으로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원이 넘는 가구를 고소득자로 보고 이들의 전세 보증 상품 이용을 제한하는 게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안이다. 다만 상품 이용 가능한 소득 기준을 신혼·맞벌이 부부는 8500만원, 1자녀 가구는 8000만원, 2자녀 가구는 9000만원, 3자녀 가구는 1억원 이하로 달리 적용할 방침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에서 전세 보증 상품을 이용한 사람들의 약 70%가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원 이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고소득자가 서민이 이용하는 전세 자금 보증을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면서 "고소득자는 전세 보증 없이도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유도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최근 주택 전세 대출이 크게 늘어나자, 정부가 9월말부터 다주택자·고소득자의 전세 대출·정책 자금 대출을 옥죄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연 소득 7000만원이 넘는 맞벌이 부부 등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또 무주택자와 1주택자만 전세 보증 상품을 이용할 수 있고, 다주택자는 아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기존과 달라지는 점이다. 다주택자 제한은 최근 전세 자금 대출을 활용한 부동산 투기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 영향을 끼쳤다. 일부 다주택자가 전세 보증을 활용해 은행에서 전세 자금을 대출받아 자기는 전세를 살면서 집을 한 채 더 사는 사례가 잇따라 발견됐다는 것이다. 1주택자의 경우 살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겨 가려는 수요를 감안해 제한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대출자들 "연소득 7000만원 기준은 너무 가혹"

하지만 맞벌이 부부 등을 중심으로 "사실상의 전세 대출 제한"이라며 "부동산 가격 잡으려다 전세 수요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는 반발이 일고 있다.

전세 대출 1억6000만원을 받아 종로구 창신동 전세 2억5000만원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최모(30)씨는 "최근 아기가 태어나서 좀 더 넓은 집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육아휴직 중인 아내와 합하면 연소득 기준이 넘는다"며 "다주택자 잡겠다며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성북구 돈암동 전세 거주자 이모(32)씨는 "서울에서 맞벌이로 7000만원 안 넘는 가구가 얼마나 되느냐"며 "집 살 대출도 막고 전세 대출도 막으면 우린 거리에 나앉으란 거냐"고 말했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29일 하루에만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청원이 10여 건 올라왔다. 한 청원자는 남편과 합산 연봉이 8500만원이 넘지만 전세 보증금 1억8000만원짜리 빌라에 전세 대출을 받은 신혼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우리 부부는 전세 대출이 막히면 월세로 돌아서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연봉 7000만원이래 봤자 세금 떼고 나면 5000만원 수준이고, 한 달에 200만원씩 모은다고 해도 전세 대출 없이 2억원짜리 전세 얻으려면 8년 이상 걸린다"며 "부모 도움 없이 본인 힘으로 학자금 대출, 전세 대출 받아 가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적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전문위원은 "전세 자금 대출을 죄면 가수요를 차단하는 효과가 일부 나타나면서 일단 주택 거래량은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런다고 가격이 쉽게 빠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센터장은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너무 크다"며 "당장 부부 중 하나가 지방 파견 근무라도 나가면 무조건 월세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득 요건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실수요자들 입장에서 기준이 까다롭다는 지적을 반영해 현재 관련 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무주택자의 경우 전세 보증 상품을 이용할 때 소득 요건을 '부부 합산 연 7000만원'보다 좀 더 완화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