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에서 조깅이나 걷기는 두 발로 도시를 느낄 수 있어
원초적 걷기 욕망을 표현한 그림들 보며 휴식과 영감 얻길

출장 가방에 운동화를 필수품으로 넣어 떠나는 리더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 운동화는 리더의 열정과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출장지에서도 그들은 틈나는 대로 조깅을 하거나 걸으려 한다. 단순히 눈과 귀만이 아닌 두 발에 전해오는 감각으로 그 도시를 느끼고자 한다.

운동화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코드다. 흔히 '운도남'이라 표현되는, 운동화를 신고 도시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남자는 그 자체로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한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작품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낭만주의 시대 독일의 대표작으로 걷기의 원시적 욕망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정장 구두가 아닌, 개성 있는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리더라면 그는 경제적 여유와 함께 예술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자부심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화는 육체적 활동을 위한 도구지만, 이 경우에는 정신적 창조행위를 하고 있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확실히 걷기 열풍이다. 산들바람이 부는 들판을 걷고 산을 오르며 흙냄새와 꽃냄새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직장인들은 최소한 점심시간만이라도 사무실 부근의 골목길을 걷고자 한다. 머릿속에 찌든 스트레스의 찌꺼기를 벗겨내는 행위다.

주말 서울 성곽길을 함께 걷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고,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더 나아가 일생일대의 긴 휴가를 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의 콤포스텔라 옛 순례 길을 홀로 걷는 이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걷기 열풍은 지구촌의 보편적 현상이다. 산업화 이후, 정보화 사회를 거치면서 더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리더들의 몸은 언제나 탈출을 꿈꾼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다비드 르 브르통 교수는 '걷기예찬'에서 걷기의 매력을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라 표현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독일인들은 역사적으로 게르만족의 이동을 한 후예답게 도보 여행의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정처 없이 어디론가 걷고자 하는 욕망을 가리켜 독일인들은 '반더루스트'(Wanderlust)라 부른다. 직역하면 방랑의 기쁨, 방랑벽이라 할 수 있지만, 먼 곳까지 떠나는 도보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반더른'(wandern)은 걷기, 하이킹, 혹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등의 뜻을 가진 동사다. 반더루스트와 방랑자를 가리키는 단어 'Wanderer'는 국제적인 단어로 쓰인지 오래다.

해마다 5월 14은 '하이킹 데이'(Tag des Wanderns)으로 지정되어 하이킹 투어와 관련 워크숍 같은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년 전부터는 24 시간 내에 7개의 큰 도시를 통과하는, 100km 걷기 행사인 'Megamarsch' 대회가 펼쳐지고 있는데, 참가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1869년에 발족한 '독일 알프스연맹'(DAV)는 세계에서 가장 큰 등산 스포츠 협회인데, 120만 명의 회원수를 자랑한다.

독일총리 안겔라 메르켈이 여름휴가 때면 남편과 함께 알프스 산맥의 지류인 남 티롤지방으로 향해 등산을 즐기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독일 여성 크리스티네 튀르머는 2007년 직장을 그만두고 4만 km에 이르는 미국과 유럽, 호주의 주요 하이킹 코스를 모두 완주한 뒤 펴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는 2008년 북미지역의 3대 트레일 코스(North America's Pacific Crest Trail, Continental Divide Trail, Appalachian Trail)를 모두 완주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이 3개 코스를 완주한 사람은 100명 이하일 정도로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코스다.

중세 때부터 독일의 남자들은 성인이 되기 이전 직업을 배우기 위한 방랑 여행을 해야 했다. 당시의 도보 여행은 낭만과는 크게 거리가 멀어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 역시 여행길이 가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길을 택일해 길을 떠났으며, 출발에 앞서 사랑하는 이들 앞으로 유서를 써야 할 만큼 비장하였다. 이때의 장거리 도보 여행이란 반(半) 목숨을 건 행위였다.

이처럼 종교와 직업적 의무여행에서 현대적 개념의 도보여행으로 바뀌게 된 것은 1800년 경, 독일에 낭만주의 열풍이 불면서부터다. 프랑스에서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자 독일의 문인들과 작곡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걷기와 하이킹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는 걷기 운동이라는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의 뿌리라 볼 수 있고, '반더포겔(Wandervogel)'이라는 범국민적인 국토순례 운동으로 이어졌다.

배낭여행자들에게 안전하고 싼 값으로 잠자리를 제공하는 유스호스텔은 독일의 '유겐트헤르베르게'(Jugendherberge) 건설운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대자연에서 젊은이들의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적당한 숙소를 지어주자는 운동이었다.

18세기 후반 '질풍과 노도(Strum und Drang) 시대에는 자연 탐구가 지식인들을 자극했다. 독일의 저명한 탐험가이며 과학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 같은 사람이 남미 등 새로운 지역의 탐구로 이어지게 만들었으며, 윌리엄 월스워드 등 영국 시인들은 새로운 자연을 노래하였다.

당시 예술가들의 최종 목적지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가보는 것이어서 위대한 여행자 괴테로 하여금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최고의 기행문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독일 국내에서는 라인강변을 따라가는 여행과 하르츠 산맥을 하이킹하는 것, 그리고 지금의 체코와 접경지대에 있는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을 가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러한 풍조와 열망을 담은 가장 유명한 그림이 낭만주의 시대 독일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1818년에 그린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라는 작품이다.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방랑을 모티브로 하는 곳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원래 함부르크의 '쿤스트할레' 미술관에 걸려있지만 현재 임시로 베를린의 올드 내셔널 갤러리(Alte Nationalgalerie)에 전시중이다.

[►[미니정보] 반더루스트(Wanderlust) 특별전]

독일인들 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걷기 운동의 뿌리를 찾기를 원한다면 최초의 '반더루스트 특별전'이 열리는 베를린 박물관 섬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는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고 도대체 왜 길을 떠나려는 것일까? 방랑벽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반더루스트' 정신을 본격적으로 알고자 한다면, 그리고 혹시 베를린에 출장 가는 리더들이라면 올해 9월 16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 바란다.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았고 당연히 앱도 있을 리는 만무하며 내비게이션 장치도 없었던 시대의 인간들이 가졌던 방랑의 열망에서 그 비밀을 찾을 수 있다.

방랑이란 단순한 열정의 낭비가 아니었다. 걷고 또 걷는 독일인들의 도보여행 열풍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화풍을 낳았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하듯 아디다스, 푸마 같은 세계적인 운동화 회사도 탄생시켰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변혁시키려 한다면 길을 떠나자. 특히 기업의 리더라면 더욱 그렇다. 세상을 향한 새로운 안목,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