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올여름 북반구에 기록적인 폭염을 가져왔다. 이런 가운데 지구에 태양을 가리는 차양을 쳐 온난화를 막겠다는 대담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데이비드 키스 교수는 1년 안에 애리조나주 투손 상공 20㎞의 성층권에 대형 기구를 띄우고 탄산칼슘, 황산염 같은 미세 입자를 뿌려 반경 1km에 일종의 햇빛 반사층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과학기술로 기후를 조절해 온난화를 늦추려는 이른바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기후 시스템에 혼란을 야기해 더 심각한 기상이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이 아이디어 제공

성층권에 태양 반사층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자연에서 얻었다. 지난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당시 2000만t에 이르는 이산화황이 분출됐다. 성층권까지 올라간 이산화황은 말 그대로 하늘을 가렸다. 이로 인해 햇빛이 10%나 줄어들면서 북반구 평균 기온이 섭씨 0.5~0.6도 떨어졌다.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2006년 성층권에 이산화황을 150t 살포하면 온실가스 발생으로 인한 온난화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키스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지금 추세라면 다음 세기까지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7도 상승하지만 성층권에 미세 입자를 계속 살포하면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묶어둘 수 있다고 밝혔다. 2015년 세계 각국은 2100년까지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높은 수준으로 제한한다는 파리기후협정을 체결했다.

햇빛을 반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미국 코넬대 더글러스 맥마틴 교수는 하원 지구공학 청문회에서 바다를 덮고 있는 구름을 밝게 하면 햇빛을 더 많이 반사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공기 중의 수분이 소금 결정 같은 입자 주변으로 달라붙으면 구름이 된다. 입자에 달라붙는 수분이 증가할수록 구름이 더 밝아진다. 구름이 있는 곳에서 대형 선박이 하늘로 바닷물을 뿌리면 물이 증발해 구름으로 유입되고 소금 입자들은 수분을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방법은 특히 온난화로 피해를 입은 산호초지대나 빙하가 녹아내리는 남극처럼 특정 지역을 골라 기온을 낮추는 데 쓸 수 있다고 평가된다.

미세 거품으로 해수면의 햇빛 반사를 증가시키는 방법도 있다. 2016년 영국 리즈대 연구진은 비누 성분의 화학물질을 이용해 전 세계 바다를 오가는 선박에서 발생하는 물거품의 지속 시간을 10분에서 10일로 1440배 늘리면 2070년까지 지구의 지표면 평균 기온을 0.5도까지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우주에 대형 반사경을 띄우거나 농작물의 유전자를 변형해 표면이 햇빛을 더 잘 반사하도록 만드는 방법도 제안됐다.

선진국 중심으로 연구프로그램 증가

지구공학은 10여 년 전만 해도 일부 과학자의 엉뚱한 생각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지구 평균기온이 이미 산업혁명 이전보다 1도나 높아진 상황에서 파리협약이 목표로 잡은 1.5도 상승 제한이 실현될 수 없다는 회의론이 나오면서 다시 지구공학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각종 규제를 반대하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도 파리협약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온실가스 감축 외에 지구공학을 대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도 급격한 온난화에 대비하는 방법으로 지구공학적 방법론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과장은 "IPCC는 2013년 5차 보고서에서 지구공학을 소개했고 2021년 6차보고서에는 아예 별도로 한 장(章)을 할애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키스 교수의 연구에는 게이츠재단, 휴렛재단 등 민간에서도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지구공학을 온난화에 대비한 대안의 기술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최소한 온실가스 감축이 효과를 볼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기술로 준비를 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연구재단은 2013년부터 지구공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스위스 취리히공대 등이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하버드대가 지구공학 연구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도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 베이징사범대, 저장대 등이 참여하는 지구공학 연구프로그램을 발족시켰다.

지구공학은 햇빛 차단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에도 한몫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바다에 철 성분의 비료를 대량 살포해 식물성 플랑크톤을 크게 증식시키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플랑크톤이 늘어나면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흡수해 자원으로 바꾸는 시도도 이뤄졌다. 하버드대 키스 교수는 지난 6월 기존보다 6분의 1 저렴한 비용으로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산화탄소는 나중에 물에서 분리한 수소와 반응시켜 연료를 만들 수 있다.

지구 기후시스템에 대혼란 우려도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태양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차단하면 지구 전체의 기후시스템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햇빛을 가리면 지표면이나 해수면의 물 증발량이 줄어 곳곳에 가뭄을 유발할 수 있고, 대기 흐름이 달라져 곳곳에 기상이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최근에는 지구공학이 온난화를 막아도 농업에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 UC버클리 연구진은 지난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과거 대형 화산 폭발 전후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을 추적한 데이터를 근거로 한 시뮬레이션 연구에서 인위적으로 햇빛을 차단하면 농업 생산량이 5.3% 떨어진다고 예측했다. 햇빛의 산란으로 인해 작물 광합성이 악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구공학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혜택과 피해를 보는 국가나 지역이 엇갈리기 때문에 통일된 행동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대의 필 윌리엄슨 교수는 올 초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공학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공개적이고 투명한 과정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