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취소시 주주 근로자 피해 크다는 게 중론"
14일 진에어가 제출한 개선안으로 경영정상화?…논란 예고

지난 2012년 조현민 당시 진에어 전무가 객실승무원을 맡아 탑승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미국 국적인 조 전 전무는 항공안전법을 어기고 진에어 등기임원을 맡았었다.

국토교통부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진에어 불법 등기이사 재직 사건에 대해 진에어 면허를 유지키로 했다. 면허 취소시 근로자 고용불안과 소비자 불편, 소액주주 피해 등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는 판단이다. 현행 항공법상 외국인인 조 전 전무가 2010년부터 6년간 진에어 등기임원을 역임한 것은 면허 취소 사유다.

다만 국토부는 진에어 신규 항공 노선 취항과 신규 항공기 등록 등의 사업 확장을 경영 행태가 정상화 될 때까지 제한키로 했다. 오너 일가의 전횡을 차단하겠다는 가시적인 ‘액션’을 취할 때까지 사업 확장을 막겠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9월 항공 산업 경영 실태 개선 방안을 발표한다. ‘칼피아(KAL+마피아·대한항공과 국토부 관료들의 유착관계)’ 논란을 의식해 지속적인 경영 개선을 요구하겠다는 행보다.

◇"불법은 맞지만 회사 문 닫을 경우 부정적 영향 크다"

국토부는 17일 "진에어 면허 취소 처분에 대한 검토 결과 면허 취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정렬 국토부 2차관은 "면허 취소로 달성 가능한 사회적 이익보다 면허 취소로 인한 근로자 고용불안정, 예약객 불편, 소액주주 및 관련 업계 피해 등 사회경제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면허 유지 처분 근거를 설명했다.

김 차관은 "한진그룹 계열사 임원의 결재 배제, 사외이사 권한 강화, 내부신고제 도입, 사내고충처리시스템 보완(노조 조사단 등) 등 진에어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진에어에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며 "일정 기간 신규 노선 허가와 신규 항공기 등록 및 부정기편 운항 허가를 제한하겠다"고 말했다.

진현환 국토부 항공정책관은 "사회통념상 진에어 경영이 정상화됐다고 판단되면 면허자문위원회와 업계 전문가, 법률 전문가 등의 조언을 받아 제재를 풀 계획이다"며 "진에어의 근로자 대다수가 동의하는 수준의 경영 방식이나 의사결정 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에어가 3일 전 낸 개선안이 ‘경영정상화’ 기준

국토부는 진에어 면허 취소 여부를 놓고 국토부 안팎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면허자문회의를 열었다. 자문회의는 국토부 공무원 4명, 업계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됐다.

면허자문회의에서는 진에어가 불법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면허 취소로 갑작스럽게 회사가 문을 닫을 경우 근로자 피해 등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의견이 주였다. 장기간 정상영업 중인 항공사의 면허를 취소하게 될 경우 근로자 고용 불안, 소비자 불편, 소액주주 손실 등 국내 항공산업 발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게 대다수 의견이었다는 것이다. 일부 위원들은 "법 위반 행위에 대해 법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 면허를 취소하는 게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이 1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에어·에어인천 면허 취소 관련 면허자문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토부는 "진에어가 미국 국적의 조현민(조 에밀리 리)이 2010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등기임원으로 재직한 것을 청문 과정에서 사실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현행 항공안전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은 국적 항공사 등기임원을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항공운송면허 취소의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면허 취소 대신 국토부는 진에어에 일련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요구키로 했다. 김 차관은 "진에어가 청문 과정에서 제출한 ‘항공법령 위반 재발 방지 및 경영문화 개선대책’이 충분히 이행될 때까지 신규 노선 허가, 신규 항공기 등록 등을 불허하겠다"며 "수시로 진에어를 모니터링해 이행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경영 정상화 방안이 실효성이 있느냐다. 경영 정상화 방안은 진에어가 지난 14일 국토부에 제출한 재발 방지, 갑질 경영문화 개선 대책을 담은 7쪽 분량의 계획서를 기반으로 한다. 사실상 진에어가 낸 일종의 ‘자구안’인 셈이다.

이 자구안에는 한진그룹 계열사 임원의 결재 배제, 사외이사 권한 강화, 내부신고제 도입, 사내고충처리시스템 보완(노조 조사단 등)이 담겨있다. 그런데 진에어 임원 외 다른 계열사 임원의 결재 배제는 기본적인 법률을 지키는 것이고, 내부신고제 도입 등은 이행 실태를 알 수 없다. 대한항공은 사외이사에 특수 관계인 법무법인 광장 소속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사외이사의 감시 기능을 무력화시켜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대한항공 노조는 직원들로부터 ‘어용’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진현환 정책관은 "항공산업 경영행태는 한국 기업에서 가장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총수 일가의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 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정부의 의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수 일가가 대한항공 및 그 계열사에 임직원으로 일하는 것을 100% 제어할 수 없지만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수준까지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제 더 생기면 국민연금 소액주주권 행사"

국토부는 "총수 일가가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게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만약 총수 일가가 경영에 복귀하려고 한다면 행정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제재가 조 전 전무 등 총수 일가의 진에어 경영 참여 금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재 수단으로 국민연금의 소액주주권 행사 등의 카드도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진 정책관은 "문제가 있을 경우 국민연금이 소액주주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진 정책관은 밝혔다

이번에 내놓은 제재 방안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진 정책관은 "LCC(저비용 항공사)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인데, 실질적으로 해당 분야 사업을 제한하는 것이라 대한항공 입장에서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면허 취소 여부 심의 중에도 진에어가 계속 신규 항공기 등록 신청을 해왔다"며 "이를 제한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국토부는 법령 개선안과 함께 국내 항공 산업에 대한 국민 신뢰성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항공안전 및 소비자보호 강화 등 제도개선 방안을 구체화해 오는 9월 중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지난 4월 조 전 전무의 진에어 등기이사 재직이 불법이라고 공식 발표한 뒤 2개월 넘게 감사를 진행했지만, 제재 수위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토부는 지난 6월 말 진에어에 대해 청문 절차를 거쳐 면허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고 발표했고, 지난달 30일과 이달 6일 두 차례 비공개 청문회를 진행했다. 당초 이달 중순쯤 3차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건너뛰고 지난 16일 면허자문회의 및 면허 취소 자문위원회를 열고 이번 결정을 내렸다. 진 정책관은 "1·2차 청문회에서 충분히 의견 교환이 이뤄졌고 더이상 새로운 쟁점이 더 나오지 않아 3차 청문회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며 "항공 업계 불확실성을 빨리 없애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 여전히 모호한 항공법 개선과제로 남아

외국인 임원 재직과 관련된 법 규정이 모호하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조 전 전무의 진에어 등기임원 재직이 불법이 된 근거는 ‘항공안전법 10조’다. 그런데 국토부는 이번 발표에서 "조 전 전무 등기임원 재직으로 외국인의 국내 항공사 지배를 막는다는 실제적 법익 침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법률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등기임원 불법 재직과 관련된 처벌 규정도 없었다. 국토부가 별도 ‘자문회의’를 구성해서 몇 개월 간 심의를 벌인 이유다. 이날 국토부는 러시아 국적의 수코레브릭이 2012년 5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등기임원으로 재직한 에어인천에 대해서는 별도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화물 전용 저비용회사로 소규모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국토부는 근거를 댔다. 진에어에 대한 처분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