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스타트업캠퍼스. 2층 전시관 내부는 텅 비었고, 입구에 설치된 가로 3m, 세로 2m의 전광판은 불도 꺼져 있었다. 원래 이곳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스타트업의 혁신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지난 4월부터 문을 닫았다. 센터 관계자는 "전시관 예산이 삭감돼 어쩔 수 없이 폐쇄했다"며 "지난 3년간 해외에서 5000명의 방문객이 와 한국의 스타트업 제품들을 둘러보고 수출 계약도 이뤄졌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불 꺼진 혁신센터 전시관 -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스타트업캠퍼스 내 창조경제혁신상품 전시관이 불이 꺼진 채 닫혀 있는 모습. 원래 이곳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 혁신센터에서 육성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들의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었지만 예산이 줄면서 지난 4월 폐쇄됐다.

서울·경기·인천·제주·강원 등 전국 17곳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로 정부·지방자치단체·대기업이 힘을 모아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취지로 설립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센터 운영권을 넘겼다.

본지가 중기부로 넘어간 지 1년을 맞은 혁신센터 현황을 점검한 결과, 센터 대부분은 예산 삭감에 따른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올해 국비 예산은 376억86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15% 줄었다. 대기업 지원금은 지난해 125억원으로 2016년 때의 절반 수준까지 줄었지만, 올해는 더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센터 주변에선 "간판은 그대로인데 대기업과 정부의 관심이 적어지면서 기능이 위축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예산 줄면서 고군분투

경기 센터는 특화 기능으로 내세우던 글로벌 사업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 예산은 51억3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절반이 넘게 깎였다. 이에 센터가 육성하는 100여곳 스타트업에 대한 해외 마케팅·판로 지원 사업도 줄었다. 소형 공기청정기 제조 스타트업 클레어 이우헌 대표는 "작년과 달리 올 들어 입주한 기업들은 지원을 제대로 못 받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해외 마케팅 비용 3000만원을 센터에서 지원받아 인도네시아에 400만달러(45억원) 규모의 수출을 달성했다. 센터들이 스타트업을 선정해 6개월간 창업자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해주는 보육 사업도 없어졌다. 인천 센터는 2015년부터 매년 30억원대 예산으로 스타트업 10여곳을 지원했지만, 올해 사업을 접었다. 친환경 조리기구 제조 스타트업 그린아이엠티 김부자 대표는 "시제품을 제작해주는 센터 지원이 사라지면서 제품 출시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고 했다. 서울 센터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시 예산 20억원을 전액 삭감당했다. 센터 관계자는 "서울디자인재단과 함께 의류 디자이너를 발굴해 창업을 도와주는 사업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센터들은 다른 부처나 기관 과제를 수주하는 방법으로 모자란 예산을 충당한다. 대전 센터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지방 기업 육성 프로젝트와 같은 외부 사업을 따내는 식으로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센터 관계자는 "직원 40여명 중 10명 정도가 외부 사업을 따내고 이를 수행하는 데 매달린다"며 "원래 설립 목적인 스타트업 보육·지원 역할에 집중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전담 기업도 지원 줄여

정부가 올 2월 대기업과 센터를 1대1로 연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대기업들의 관심도 사라지고 있다. 인천 센터는 KT로부터 해마다 받던 기부금 15억원이 끊겨, 스타트업 10여곳과 KT와의 공동 서비스 개발 사업을 중단했다. 전남 센터 출신의 과자 제조 스타트업 쿠키아 김명신 대표는 "대기업이 직접 창업기업을 가르치고 사업 DNA를 이식해주는 것이 혁신센터의 장점이었지만, 이제 대기업들이 발을 빼면서 그 장점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강원혁신센터 파견 직원 3명을 올해 본사로 모두 불러들였고, 카카오도 한때 9명까지 제주혁신센터에 파견했던 직원을 올해 2명만 남겼다. 하지만 중기부는 내년 혁신센터 예산을 올해보다 늘려 혁신 성장의 교두보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혁신센터와 함께 하반기 추경으로 확보한 예산 1013억원으로 다음 달부터 1500명의 예비창업자를 선발해 최대 1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