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경제 철학인 소득주도성장의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7일 조선비즈가 국내 금융회사, 경제연구기관, 주요 대학 등에서 활동하는 경제 전문가 19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11명(57%)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6명(32%)은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원래 방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답변은 한명도 없었다. 2명(11%)은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 "잘 모르겠다", "혁신 성장, 공정 경제와 병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소득주도성장의 속도 조절을 요구한 11명 전문가는 정책 취지엔 공감하나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인 소득 양극화를 해결하려는 정책 목표는 바람직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구체적인 정책 설계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김현욱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한국 경제도 소득 불평등 문제 등 형평성 저하에 따른 문제를 교정해 경제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우리 경제가 형평성 차원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960년대 이후 경제 개발 과정에서 재벌 기업 위주의 성장은 각종 모순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소득, 소비, 투자 사이클을 유지하는 정책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지금처럼 생산성 증가율 등을 완전히 무시한 구호적인 수치 제시, 징벌적 세금 부과 등으로 이어지면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저소득층의 소득과 소비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과제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소득 주도 성장 기조에 찬성한다"면서도 "다만 최저임금 인상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며, 최저임금이라는 하나의 수단에 의존하지 말고 여러 정책을 병행·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현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 각종 구조개혁 지연 등은 모두 부실한 사회 안전망 때문이다"며 "정부가 일단 사회 안전망에 대한 장기적인 청사진부터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득 주도 성장의 전면 수정을 요구한 6명 전문가는 관련 정책 자체를 성장 정책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성장 정책과 분배 정책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소득 주도 성장으로는 장기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어렵고 단기 거시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경제 성장은 공급 측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며, 분배는 분배 문제에 대해 명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소득이 늘어나도 국내에서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고 국외로 빠져 나간다"며 "우리 경제 내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 생태계 복원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 과제"라고 강조했다.

홍춘옥 키움증권 이사는 "소득이 생산성을 결정짓는다는 효율 임금 가설은 일부 산업, 일부 시기에만 유효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관광객 급감 영향으로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의 감소가 지속되는 가운데, 단행된 대폭적인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고용 감소에 따른)내수경기의 침체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설문에 참여하신 분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 △민성환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 △배현기 하나금융연구소장 △서영경 대한상공회의소 SGI원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안기태 NH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임일섭 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연구센터장 △조경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연구소장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하근철 국제금융센터 부원장 △허진욱 삼성증권 거시경제팀장 △홍춘욱 키움증권 이사